19편 자장(子張) 제25장
진자금이 자공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공손해서 그렇지, 중니(仲尼공자의 자)가 어찌 그대보다 현명하겠는가?” 자공이 말했다. “군자는 말 한마디로 똑똑한 자가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한다네. 그래서 말할 땐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네. 스승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마치 사닥다리로 하늘을 오를 수 없는 것과 같네. 스승님이 나라를 얻어 다스렸다면 ‘백성이 저마다 처지에 맞게 뜻을 세우게 하고, 갈 곳으로 인도해주고, 모여드는 족족 품어주고, 평화와 조화를 이루도록 격동시켰을 것이니 살아선 영예롭고, 죽어선 애도받게 할 것’이네. 이러한데 어찌 내가 그 경지에 이르겠는가?”
陳子禽謂子貢曰: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진자금위자공왈 자위공야 중니개현어자호
子貢曰: "君子一言以爲知, 一言以爲不知. 言不可不愼也.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夫子之得邦家者, 所謂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其生也榮, 其死也哀. 如之何其可及也?"
자공왈 군자이언이위지 일언이위부지 언불가불신야 부자지불가급야 유천지불가계이승야 부자
지득방가자 소위이지사립 도지사행 수지사래 동지사화 기생야영 기사야애 여지하기가급야
진자금은 진(陳)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금(子禽), 이름은 진항(陳亢)입니다. 공자의 제자라는 설과 자공의 제자라는 설이 엇갈리는 인물입니다. '논어'에 3차례 등장하는데 공자에게 직접 질문하는 장면은 없고 자공이나 공자의 아들인 공리(백어)을 통해 공자의 가르침을 간접적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이거나 자공의 제자라면 감히 공자를 자공에 견주진 못할 것입니다. '공자가어'에 따르면 자공보다 열살이 어렸다고 하니 아마도 자공을 통해 공자에 대해 알게돼 호기심으로 공자 주변 인물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3000여명에 이르렀다는 공자학단에서 곧고 강직하기로는 자로가 으뜸이고, 어질고 온화하기로 안연이 으뜸이었다면, 총명하고 수완 좋기로는 자공이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머프'의 캐릭터에 빗대자면 자로가 ‘투덜이(Grouchy)’와 ‘덩치(Hefy)’를 합쳐놓은 캐릭터이고 안연이 모든 스머프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스머페트(Smurfette)라면 자공은 ‘똘똘이(Brainy)’와 ‘편리(Handy)’를 섞어놓은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똘똘이는 다른 스머프에겐 콧대 높게 굴지언정 파파스머프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겸손해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그런 자신이 유일하게 무릎 꿇고 인정한 사내에 대한 존경심 또한 남달랐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衛)나라 출신으로 공자보다 서른한 살 적은 자공(BC 520?~BC 452?)의 성은 단목(端木)이고, 이름은 사(賜)입니다. 그래서 공자가 그를 부를 때나 자공이 스스로를 칭할 때 사(賜)라는 호칭을 씁니다. 공자 제자 중에 가장 출세했을 뿐 아니라 이재에도 밝아 말년에 정착한 제나라에서 3대 부자에 둘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공문(孔門)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주변 인물들이 ‘공자보단 자공이지’을 떠들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자공은 스승의 위대함을 설파해 그들을 침묵시키는 동시에 후대에 공자를 만고의 스승으로 격상시키는데 큰 몫을 하는 발언을 남깁니다.
자공의 공자 칭송은 논어에 모두 4차례나 등장하는데 자장 편 제25장이 그 마지막에 해당합니다. 이 장에선 ‘사닥다리로 하늘을 오를 수 없듯이 공자의 경지를 넘볼 수 없다’는 말이 가장 유명합니다. 그 못지않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 공자가 일국의 재상이 됐을 경우의 경지를 표현한 ‘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其生也榮 其死也哀’입니다. 도가의 기풍이 느껴지는 이 표현은 좋은 정치란 결국 저마다의 결대로 살면서 정당한 제 몫을 누리게 해주는 것이 되어야 함을 설파합니다.
원문에서 가장 어려운 한자가 ‘편안할 수(綏)’입니다. 영어로 立之斯立이 ‘Let It Be’고 道之斯行은 ‘Let It Go’라면 綏之斯來는 ‘Embrace Them As They Come’이요, 動之斯和는 ‘Bring Peace to Them’입니다. 처음의 둘은 자유방임주의로 해석할 수 있지만 뒤의 둘은 복지평화주의로 풀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자 둘은 시장과 교육 정책으로, 후자 둘은 사회복지와 외교안보 정책으로도 풀어낼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공자가 꿈꾼 정치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좌우의 양 날개를 모두 갖춘 좌우겸전(左右兼全)의 정치였습니다.
그 뒤에 등장하는 其生也榮와 其死也哀의 기(其)를 공자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자의 정치가 너무 훌륭해 살아있을 땐 영화롭고 죽어서는 애도의 대상이 된다는 거죠. 저는 공자가 다스렸을 나라의 백성으로 풀었습니다. 살아선 정당한 영예를 누리고 죽어선 충분한 애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 공자뿐 아니라 그 백성 모두라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으니까요.
‘살아서 영화, 죽어서 애도’는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고요?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에 그게 가능한 것은 임금과 공경대부에 한했으며 더군다나 전화戰禍)로 인해 그마저 누리지 못하는 공경대부가 넘쳐났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춘추시대 시해당한 군주가 36명이었고 멸망한 나라가 52개였으며 제후가 달아나서 그 사직을 보호하지 못한 것은 셀 수조차 없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만인평등의 현대에도 살아서 영화 한 번 못 누리고 죽어서 제대로 된 추도식도 못 치르는 이들이 부지기수 아니던가요?
P.S. 사진은 자공의 초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