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헌문(憲問) 제28장
공자가 말했다. “군자의 도는 세 가지가 있는데 나는 (어느 하나) 능하지 못하구나.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슬기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공이 말했다. “이는 스승님께서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子曰: “君子道者三, 我無能焉. 仁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자왈 군자도자삼 아무능언 인자불우 지자불혹 용자불구
子貢曰: “夫子自道也.”
자공왈 부자자도야
한국의 무수한 학교와 가정에서 교훈과 가훈으로 걸어놨던 지인용(知仁勇)이 등장한 대목입니다. 오늘날에는 지(知)의 명사형인 지(智)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 출전이 되는 책에는 모두 지(知)로 등장합니다. 19세기 말 일본에서 이를 변용해 교육의 3대 목표로 ‘지덕체(智德體)’를 표방했는데 그 영향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논어’의 이 장에선 순서가 인지용이란 점입니다. 9편 자한 제29장에도 비슷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거기선 지인용의 순서입니다. 공자가 가장 높이 평가한 덕목은 지가 아니라 인입니다. 그런데 왜 인지용이 아니고 지인용의 순서가 된 것일까요?
공자의 손자인 공급(자사)가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중용’에도 지인용의 순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말을 빌려서 세상 어디에서나 통하는 다섯 가지 도와 그걸 실천하도록 세 가지 덕을 말합니다. 이를 두고 후대의 삼강오륜을 떠올릴 만도 합니다. 하지만 오도에는 오륜에 들어가는 장유유서가 없습니다. 대신 형제간의 우애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삼덕이 곧 여기서 군자삼도(君子三道)로 언급되고 있는 지인용입니다.
이어서 역시 공자의 말을 인용해 “배우기 좋아하는 것은 지에 가깝고(好學 近乎知), 힘써 행하는 것은 인에 가깝고(力行 近乎仁),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에 가깝다(知恥 近乎勇)”라고 풀어놨습니다. 송유(宋儒)들은 이를 토대로 지인용이 학문을 닦는 순서라고 새깁니다. 먼저 머리로 배워서 미혹되지 않도록 기초를 다지고. 이를 몸으로 실천해 덕을 쌓고, 마지막으로 그런 지행일치를 이루지 못했을 때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더욱 용맹정진하기 위해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허나 이는 자여-자사-맹자-주자로 이어지는 수제학 관점에 가까운 해석입니다. 그에 따르면 군자는 세 가지 도 또는 덕을 모두 두루 터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자 발언의 취지는 이와 좀 다릅니다. 군자의 길이 세 갈래가 있으니 인의 길, 지의 길, 용의 길이 있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 셋의 범주가 각기 다른데 나는 셋 중 어느 하나에도 능하지 못하다고 한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부연설명을 단 자공의 발언도 “그 세 갈래 도라는 것이 실은 우리 스승님이 능한 세 분야를 말한 것”이라고 새길 수 있습니다.
이에 입각하면 군자학의 클래스를 셋으로 나눴다면 인반, 지반, 용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세 반에선 각기 뭐를 배운다고 봐야 할까요? 인반에선 수제학과 치평학을 종합해서 가르치니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목민관을 키우는 학급으로 봐야 합니다. 지반은 그런 통치를 뒷받침할 역사, 경학, 의례, 예약에 정통한 학사(學士)나 외교관이 될 관료를 키우는 학급이었을 겁니다. 용반은 국방과 치안을 담당할 무관(武官)을 키우는 학급 아니었을까요?
실제 공자학당에서 가르친 과목은 육예(六藝)라 하여 여섯 과목이었습니다. 의례(禮), 음악(樂), 활쏘기(射), 말타기 또는 전차몰기(御), 붓글씨(書), 셈하기(數)로 구성됩니다. 사실 이는 대부(大夫)를 겨냥한 과목이 아니라 그 아래서 실무적 업무를 처리할 사인(士人)을 육성하기 위한 기초 과목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공자가 군자라는 표현을 쓸 때 염두에 뒀을 대부 이상의 통치자를 육성하기 위해서 이를 응용하고 종합한 심화반이 별도로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심화반을 굳이 구별하자면 인지용의 3개 클래스를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