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자로(子路) 제30장
공자가 말했다. “백성을 훈련시키지 않고 전쟁으로 내모는 것은 그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이다.”
子曰: “以不敎民戰 是謂棄之.”
자왈 이불교민전 시위기지
원문의 교(敎)는 보통 교화시킨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백성을 덕으로 감화시키고 예로써 기강이 깃들게 한다는 뜻입니다. 다음 장에 등장하는 교는 그렇게 풀이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 장에선 전쟁에 백성을 동원하기 직전에 가르침을 뜻하니 훈련시킨다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춘추시대에 전쟁은 어떤 양상으로 펼쳐졌을까요?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전차 중심의 전차전이었습니다. 전차는 기원전 2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명돼 기원전 1000년 경 은나라 말기 중국에 전해져 서주시대는 물론 동주(춘추전국)시대에도 전쟁의 중심이 됐습니다.
이 전차를 세든 단위로 사(駟)와 승(乘)이 있습니다. 사는 네 마리 말을 한 세트로 묶어서 세는 단위고 승(乘)은 전차의 대수를 뜻했습니다. 따라서 1000사와 1000승은 모두 1000대의 전차를 말합니다. 춘추시대에는 1000대 이상의 전차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를 천승국(千乘國)이라 하여 강대국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제나라, 진(晋)나라, 진(秦)나라, 초나라는 몇 천대의 전차를 동원할 수 있는 천승국이었습니다.
춘추시대 말까지 1대의 전차에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기갑병 10명이 배치됐습니다. 전차 위에 올라타는 3명(위의 그림 참조)과 이를 호위하는 7명입니다. 이들이 상비군에 해당하며 마차 위에 탑승해 이들을 지휘하는 군관이 사(士)에 해당합니다. 그 두 배 가량의 병력은 갑옷도 없이 무기만 든 채 그들 뒤를 좇아가는 보병이었습니다. 따라서 천승의 전차가 동원됐다하면 기갑병의 숫자는 1만 명이고 보명은 2만 명 합쳐서 3만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차병에 부속된 보병이 다시 독립부대로 편제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 공자시대부터라고 봐야합니다. 진(晋)나라가 산악전에 능한 이민족인 융적(戎狄)과 싸우기 위해 기갑병을 독립시켜 보병으로 새롭게 편제한 시점이 공자가 태어날 무렵부터이기 때문입니다. 단독으로 말을 타고 기동력 있게 공격하는 기병(騎兵)은 전국시대 들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공자가 여기서 말하는 백성은 상비군으로 중무장한 전차병이 아니라 그에 부속된 보병으로 투입되는 병사를 말한다고 봐야합니다. 그들은 상비군 보다 숫자는 2배지만 갑옷도 투구도 없이 전쟁에 임해야합니다. 단순히 머릿수만 채우겠다는 생각에 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면 개죽음 당하기 십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최소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무기 다루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오와 열을 맞추면서 다른 병사들과 단체로 진격하고 후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 훗날의 손자가 ‘형명(刑名)’이라고 부른 지휘 체계와 연락 체계를 터득시켜야 합니다. 곧 시각적 신호로서 깃발의 움직임과 청각적 신호로서 징과 북 소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개인전술도 가르치지 않고 전쟁터에 내보내는 짓은 떼죽음을 맡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공자는 점잖게 “그들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지만 현대인의 정서에 맞게 “그들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이다”로 풀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