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키재기

13편 자로(子路) 제7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노나라와 위나라의 정치는 형제다.”

子曰: “魯衛之政兄弟也.”

자왈 노위지정형제야


공자는 자신의 모국인 노나라 다음으로 위나라에 대한 애증이 남달랐습니다. 14년의 천하주유 기간 가장 오랫동안 머물고 또 자주 방문한 나라가 위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노나라와 위나라의 정치상황을 비교해 바라보게 된 듯합니다.

실제 두 나라는 형제국으로 출발했습니다.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천자국으로 세운 주무왕에겐 10명이 넘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모두 봉지가 하사됐습니다. 노나라는 주무왕의 둘째 동생인 주공 희단의 봉지였습니다. 위나라는 주무왕의 끝에서 두 번째 동생 희봉의 봉지였습니다. 노나라가 주나라의 제도와 문물의 원형을 간직한 나라라면 위나라는 주나라를 내란으로부터 방위하라는 의미로 지킬 위(衛)를 국명으로 삼은 나라입니다. 노나라가 주나라의 영혼을 간직한 나라라면 위나라는 주나라의 등뼈와 같은 나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춘추시대 초기만 해도 위상이 높았던 두 나라는 영명한 군주를 배출하지 못하면서 쓰디쓴 위상 하락을 맞보게 됩니다. 제(齊) 진(晉) 초(楚) 오(吳) 같은 인접한 나라들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그들 나라 중 하나와 동맹관계를 맺지 않으면 홀로 버티기가 힘든 나라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두 나라 모두 제후의 부인이 처가 식구와 불륜에 빠져 정국이 혼미해졌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노나라의 경우엔 노환공의 부인인 문강이 이복오빠인 제양공과 불륜을 저지른 일로 인해 제후가 시해되고 결국 노나라를 골병들게 만든 삼환 정치를 배태하게 됩니다. 위나라의 경우 위령공의 부인인 남자가 같은 송나라 출신의 미남자 송조(宋朝)와 바람을 피운 여파로 제후 계승권을 두고 위장공과 위출공 부자간의 골육상쟁이 벌어져 국력이 소진됩니다.


공자는 주나라 동쪽에 위치한 그 두 나라에서 재상에 기용돼 주무왕과 주공 때의 주나라의 영광을 재현시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제후는 모두 용렬해 그런 공자를 기용할만한 안목과 배짱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노정공과 노애공은 삼환의 눈치를 보느라 공자를 지켜주지 못했고 위령공과 그 부인인 남자는 호사가의 취미로 공자를 대했을 뿐이었습니다.


공자는 제2의 관중 아니면 제2의 자산이 되고자 했으나 노나라와 위나라에는 관중을 발탁한 제환공이나 자산을 발탁한 정간공처럼 인재를 알아보는 군주가 없었던 겁니다. 공자는 이를 통탄하면서 노나라와 위나라의 정치가 형제라는 말을 남긴 것이니 난형난제라는 의미보다는 ‘도토리 키재기’라는 비판의 메시지가 깔려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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