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당위의 주체는 바로 너

11편 선진(先進) 제21장

by 펭소아

자로가 물었다. “(도와 덕을) 들으면 바로 실행해야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부형이 살아계시는데 어찌 들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겠는가.”

염유가 물었다. “들으면 바로 실행해야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들으면 바로 실행하거라.”

공서화가 물었다. “유(자로)가 물을 때는 ‘부형이 살아계시다’ 하시고, 구(염유)가 물을 때는 ‘들으면 바로 실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공서적이 혼란스러워 감히 여쭙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구는 물러서려 하기에 나가게 한 것이고, 유는 다른 사람 몫까지 하려해 물러서게 한 것이다.”


子路問: “聞斯行諸.”

자로문 문사행저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자왈 유부형재 여지하기문사행지

冉有問: “聞斯行諸?”

염유문 문사행저

子曰: “聞斯行之.”

자왈 문사행지

公西華曰: “由也問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求也問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赤也惑敢問.”

공서화왈 유야문문사행저 자왈 유부형재 구야문문사행제 자왈 문사행지 적야혹감문

子曰: “求也退故, 進之. 由也兼人故. 退之.”

자왈 구야퇴고 진지 유야겸인고 퇴지


4단으로 접혀있던 생각이 차곡차곡 펼쳐지게 만드는 장입니다. 우선은 공자가 제자들 질문에 답할 때 각자에게 맞춤형 답을 준다는 점을 명징하게 드러합니다. 공문십철 중 정사에 뛰어난 2인으로 꼽힌 자로와 염유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고 정반대의 답을 준 점이 이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염유(염구)는 자꾸 뒷걸음치려한다는 말은 6편 ‘옹야’ 제12장의 공자와 염유의 대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염유가 “스승님의 도가 싫다는 게 아니라 제 역량이 부족한 것”이라고 하자 공자가 “가보지도 않고 지레 선부터 긋는구나”라고 꾸짖습니다. 자로(중유)가 다른 사람 몫까지 하려(兼人)한다는 말은 5편 ‘공야장’ 제13장에서 자로에 대한 공자의 평가를 연상시킵니다. “자로는 가르침을 듣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또 다른 가르침을 들을까 두려워했다.” 염유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신중파라면 자로는 앞뒤 재단하지 않고 곧바로 직진하는 행동파이기에 각자에게 맞는 맞춤형 지침을 준 것입니다.


2단계로 이는 공자의 진리관과 당위론에 연결됩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사유를 펼치는 서구 근대사상과 달리 공자는 상대방을 중심에 두고 사유를 펼칠 때가 더 많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를 앞세우기보다는 ‘너니까 이렇게 하기를 권한다’는 식입니다. 데카르트나 칸트가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할 영원불멸하고 초월적이며 절대적 진리와 당위를 상정했다면 공자는 시대정신(天)와 문명질서(地) 그리고 사람(人)에 따라 진리와 당위도 어느 정도의 가변성과 융통성을 지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군자학의 개념과 용어 역시 단일하게 정의되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합니다. 군자란 무엇인가, 어짊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딱부러진 하나의 정의가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공자가 상대론자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나 당위의 고갱이를 이루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고 상정한 건 사실이니까요. 다만 그 경계를 뚜렷이 확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직접 달을 그리기 보다는 달빛에 물든 구름을 통해 달을 형상화하는 동양화의 홍운탁월(烘雲託月) 기법과 비슷합니다. 진리와 당위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형태와 경계는 저마다의 기준과 상상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서양과 다른 동양적 사상이라 오해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고 명명한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사이의 고대 종교의 진리관과 당위론은 대부분 이렇게 간접적이거나 부정적 방식으로 형상화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야훼 신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었고, 불교에서 깨달음의 주체인 아트만(Atman)은 ‘무아(無我)’라는 부정어로 규정됐습니다. 공자사상의 경우엔 여기에 상호성이 더욱 강조됐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진리와 당위의 진술이 달라진 것입니다. 인도 브라만교 경전인 ‘우파니샤드’의 구절을 인용한 미국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표현을 빌리면 “네가 바로 그것이다(Tat tvam asi)”와 공명하는 지헤라고 할 수 있습니다.


3단계는 공자사상의 이런 유연성, 융통성, 상호성이 맹자와 주자를 거치면서 상실됐다는 점입니다. 공자는 군자학의 주요 개념을 홍운탁월로 그려내면서 그 최종 형상을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지는 자신이 아니라 상대(제자)의 선택에 맡겼습니다. 반면 맹자와 주자는 자신들의 주관적 마음에 비쳐진 그 달의 형상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재구성하면서 오직 그 형상만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달의 이데아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들이 전유한 달의 형상 외의 것을 주장하는 자들은 도와 덕을 해치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규정하면서 공자사상의 유연성과 융통성, 상호성의 들의 해석을 절대화한 그들이야말로 진짜 사문난적 아닐까요?


마지막 4단계는 공자의 중용사상과 연결됩니다. 13편 자로(子路) 제21장에서 중용은 중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난국을 풀어가기 위해 평상심의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중(中)은 ‘가운데’ 보다는 ‘알맞다’로 새기는 것이 맞고 용(庸)은 ‘평범한’이나 ‘일상적’으로 새겨야 하다면서요.


이런 중용의 실천은 행동파 자로와 신중파 염유의 성향에 맞춤형 대답을 할 때도 발견됩니다. 공자는 결코 행동파와 신중파의 중간지점에 걸치는 두루뭉술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행동파에겐 신중을 주문하고 신중파에겐 과감함을 요구합니다. 모두에게 두루 통하는 모범답안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 가장 알맞게 최선의 답을 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중용의 실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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