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과 중용

11편 선진(先進) 제15장

by 펭소아

자공이 물었다. “전손사(자장)와 복상(자하) 중에 누가 낫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전손사는 지나치고 복상은 부족하다.”

자공이 말했다. “그럼 전손사가 나은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느니라.”


子貢問: “師與商也孰賢?”

자공문 사여상야숙현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자왈 사야과 상야불급

曰: “然則師愈與?”

왈 연즉사유여

子曰: “過猶不及.”

자왈 과유불급



유명한 ‘과유불급’이란 표현의 원전이 되는 장입니다. 많은 주석서는 이를 중용과 연결시켜서 풀어냅니다. 문제는 거기서 중용을 ‘중도를 지키는 것’으로 설명한다는 데 있습니다. 양 극단을 배척하고 중심을 견지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장이 중심에서 벗어나는 ‘오버쟁이’라면 자하는 중심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길치’라는 식으로 풀어냅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13편 ‘자로’ 제21장에서 살펴봤듯이 중용은 중도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심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해당 문제에 가장 걸맞은 최선의 방책을 선택해가는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중도의 중(中)은 가운데를 뜻하는 반면 중용의 중(中)은 과녁을 적중하다에 더 가깝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차이인데?’라고 되묻는 분이 계실 겁니다. 가장 큰 차이는 중도가 ‘적절함’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중용은 ‘최선’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중용은 적절한 답이 아니라 최선의 답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짜낼 수 있는 최선의 답을 찾되 상황과 여건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의 성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문제를 풀 때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해서 풀리는 문제가 있을까요? 설사 있더라도 많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문제든 자신의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풀어내도 성에 차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만 머릿속에 든 정답과 내가 처한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정답을 변용해 적용해야 합니다.


폭탄을 만드는데 질소가 꼭 필요하다고 칩시다. 그렇데 지금 당장 질소가 없다면 맥가이버처럼 주변에 질소가 들어가 있는 일상용품을 찾아서 활용해야 합니다. 이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의 최대치를 써서 질소 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있으면서 추출하기 좋은 것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중용입니다.


그럼 자장과 자하의 문제는 뭐를 말하는 것일까요? 13편 ‘자로’ 제21장에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장에서 공자는 ‘중용의 지혜를 갖춘 자를 얻어 함께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미치광이(狂者)나 고집쟁이(狷者)와 함께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장이 미치광이에 해당하고 자하는 고집쟁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치광이는 상황 변화를 중시하다 보니 정답까지 망각하는 사람이라면 고집쟁이는 정답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 상황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힌트를 빼고 생각해봐도 비슷합니다. 자장의 단점은 지식과 경험이 너무 과(過)하다 보니 상황에 딱 맞는 답을 찾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반대로 자하는 자신이 아는 지식과 경험에 상황을 맞추려 하다 보니 적합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꾀바른 자공의 관점에선 답안을 많이 갖고 있는 자장이 더 우위에 있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말한 중용의 중(中)은 단순히 과녁 적중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맞추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제한된 답안을 갖고 있더라도 제 시간 안에 과녁 근처라도 맞힐 수 있으면 뒤늦게 과녁을 맞히는 것보다 나은 게 중용의 미덕인 것입니다. 그래서 과함은 지나침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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