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향당(鄕黨) 제7장
좌석이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席不正, 不坐
석부정 부좌
향당 편은 대부분 공자의 생활태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한 문장도 좌법(坐法)에 대한 내용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좌석이 바르지 않다는 것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비뚤어지거나 찌그러진 의자를 말할 수도 있고, 깔끔하게 펴져있지 않은 방석이나 돗자리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14편 헌문 제43장을 보면 죽마고우인 원양(原壤)이 두 다리를 쩍 벌리고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보고 공자가 지팡이로 원양의 정강이를 치며 핀잔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제대로 된 좌석이 아닌 곳에 걸터앉아 있었다고 잔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앉을 자리도 엄격하게 가려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예를 중시했기에 예법에 부합하지 않는 자리배치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윗사람이 앉은 상석과 아랫사람이 앉는 하석이 잘못 배치된 경우도 있을 겁니다. 중국 고전학자인 양백준에 따르면 당시엔 신분에 따라서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앉느냐가 정해졌기에 이를 따르지 않은 좌석이면 앉지 않았다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고전의 위대함은 텍스트의 단순함 의미에만 있지 않고 거기서 파생된 다양한 의미구조에서 발생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렇게 엄격한 좌법을 실천하는 공자였기에 정당하게 주어지는 직책이 아니면 수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논어’만 보더라도 난신적자로 권력을 쥔 양화, 필힐, 공손불요 등이 공자에게 권좌를 제공할 뜻을 밝혔으나 공자는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위나라 제후였던 위령공의 부인 남자의 초청을 받아 한번 만나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질책을 받고 괴로워했던 사나이가 공자였습니다. '석부정 부좌'의 태도를 실제 삶에서도 적용했기에 아무리 높은 권좌라도 자신의 몫이 아니라 생각되면 끝까지 고사하는 지조 있는 사내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