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향당(鄕黨) 제4장
군자는 옷깃에 연보라색이나 검붉은색 선을 두르지 않는다. 다홍색이나 자주색은 평상복에 쓰지 않았다. 더위엔 칡베로 지은 홑옷을 입되 반드시 겉옷을 걸치고 외출했다. 검은 옷에는 검은 염소가죽 모피, 흰 옷에는 사슴 모피, 노란 옷에는 여우 모피를 입었다.
집에서 입는 가죽옷은 조금 길게 하되 오른쪽 소매는 짧게 했다. 잠잘 때는 반드시 잠옷을 입는데 길이는 키보다 반쯤 길게 했다. 여우나 담비 가죽은 방석으로 깔고 앉았다.
상복 입을 때가 아니면 패옥을 착용해야 하는 곳에 빠짐없이 착용했다. 예복이 아니라면 허리춤과 옷자락에 주름을 잡지 않았다. 염소 모피와 검은 관은 문상하러 갈 때는 입지 않았다. 매월 초하루에는 반드시 조복을 입고 조회하였다.
君子不以紺緅飾, 紅紫不以爲褻服.
군자불이감추식 홍자불이위설복
當暑, 袗絺綌, 必表而出之.
당서 진치격 필표이출지
緇衣, 羔裘. 素衣, 麑裘, 黃衣, 狐裘.
치의 고구 소의 예구 황의 호구
褻裘長, 短右袂. 必有寢衣, 長一身有半.
설구장 단우몌 필유침의 장일신유반
狐貉之厚以居.
호맥지후이거
去喪, 無所不佩
거상 무소불패
非帷裳, 必殺之.
비유상 필쇄지
羔裘玄冠, 不以弔
고구현관 불이조
吉月, 必朝服而朝
길월 필조복이조
공자의 패션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의외로 현대적 패션 감각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면서 다채롭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합리적 원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감(紺)은 푸른빛 도는 보라색을 말하고 추(緅)는 검붉은 색을 말합니다. 각각 재계할 때 입은 옷과 부모상을 치를 때 입은 상복의 옷자락 장식 때는 쓰는 색이라 피한 것이란 설명이 가장 그럴듯합니다. 다홍색과 자주색은 당시 군주가 입은 의복 빛깔이었기에 되도록 일상복에선 피했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이를 두고 그냥 화려한 색을 피했다고 단정해선 안 됩니다. 가죽옷을 입을 때 검정, 하양, 노랑 때깔 맞춤으로 옷을 입었으며 상복을 입을 때가 아니면 빠짐없이 패옥을 착용하는 패션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선 음감이 남달랐던 공자가 옥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와 리듬감을 좋아해서라는 추론까지 있습니다. 또 당시 흰색은 문상할 때 옷 색깔이고 검정은 멋을 부리는 색이었는데 염소가죽옷과 검정 관까지 갖추고 있음도 확인됩니다. 심지어 여우털과 담비 털로 된 방석까지 갖췄으니 멋쟁이가 따로 없습니다.
멋을 부리되 기능성을 추구했음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름엔 집에 있을 땐 얇으면서 까칠한 칡베로 된 홑옷을 입고 있다가도 밖에 나갈 때는 겉옷을 걸쳤다는 것 역시 헐벗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에티켓을 넘어 세련됨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겨울에 롱코트를 입듯 가죽옷을 길게 맞춰 입지만 활동하는데 불편함을 덜기 위해 오른 소매를 짧게 했다는 것도 그러합니다. 조정에 나갈 때 입는 조복이나 제사 때 입은 예복이 아니면 허리춤과 옷자락에 주름을 잡지 않았다는 것은 기능성과 검소함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멋 부리지 않은 듯 멋을 부린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잘 때 잠옷을 입었는데 자기 키 보다 1.5배 길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 발까지 덮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고 잠옷이 아니라 작은 이불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로선 잠옷은 편안한 수면을 위해 헐렁한 옷을 입었다 정도로 푸는 것이 적절할 듯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길월은 매달 초하루를 말하는데 왕조시대엔 매달 초하루에는 문무백관이 제후에게 문안인사를 올렸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이날은 신하들 대거 참석하는 조회가 열린다고 대조(大朝)라고 칭했습니다. 공자가 오십 대에 벼슬살이할 때와 천하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돌아온 뒤 이 대조에 빠짐없이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공직에 있을 때 그 의무 수행에 투철했던 공자였으니 어련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