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향당(鄕黨) 제1장
공자는 동네에선 공손하고 겸손하여 마치 말을 할 줄 모르는 것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종묘나 조정에서는 똑 부러지게 그렇지만 정중하게 말했다.
조정에서 하대부와 말할 때는 화기애애했고, 상대부와 말할 때는 온화하고 공손했고, 임금이 있을 때는 공손하면서도 삼가는 자세로 하지만 침착하게 할 말을 다 했다.
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其在宗廟朝廷, 便便言, 唯謹爾.
공자어향당 순순여야 사불능언자 기재종묘조정 편편언 유근이
朝與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君在. 踧踖如也, 與與如也.
조여하대부언 간간여야 여상대부언 은은여야 군재 축적여야 여여여야
장소와 지위에 따라 공자의 말하는 태도가 달랐음을 보여줍니다. 첫 단락은 공장가 향당(鄕黨)과 종묘와 조정에 있을 때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향당은 당시 1만2000가구가 있는 마을을 향(鄕), 500가구가 있는 마을을 당(黨)으로 불렀던 전통에 의거한 것으로 자기가 살던 동네를 뜻합니다. 동네에서 이웃과 어울릴 때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지만 공적 의례를 집행하는 종묘나 국가대사를 논하는 조정에선 정중함을 갖추되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단락에선 ‘순순(恂恂)’과 ‘편편(便便)’이란 형용사가 대조적 의미로 쓰였습니다. 恂은 ‘정성 순’과 ‘엄할 준’ 두 가지 뜻과 소리가 있습니다. 恂恂如也를 ‘겁먹은 듯’이라고 새길 거면 ‘준준여야’로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과 어울리는데 겁먹은 것처럼 굴었다는 것은 과도합니다. 정성 순의 보아 ‘공손하고 겸손하게 굴었다’ 정도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便 역시 ‘편안할 편’과 ‘똥오줌 변’ 두 가지 뜻과 소리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말 잘한다는 뜻인데 이때는 편으로 읽는 게 맞습니다. 동의어인 ‘말 잘할 변(辯)’과 함께 쓰이다 보니 음이 같은 변으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현대 중국어로도 '말 잘 한다'라고 할 때는 편으로 발음합니다.
두 번째 단락은 종묘와 조정이란 공적 공간에선 그 지위에 따라 말하는 태도가 달랐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선 간간(侃侃), 은은(誾誾), 축적(踧踖), 여여(與與)라는 4가지 형용사가 대비적으로 쓰였습니다. 侃侃과 誾誾은 11편 '선진' 제12장에서도 등장했습니다. 둘 다 기본적으로 화평하고 즐겁다(和樂)는 뜻인데 侃侃이 격의 없이 웃고 떠들며 유쾌한 것에 가깝다면 誾誾은 정중함과 공손함을 갖춘 가운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뜻합니다. 공자가 자신과 대등한 하대부와 대화할 때는 격의 없이 유쾌하게 말을 섞었고 윗사람인 상대부와 대화할 때는 온화하고 공손하게 말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임금이 있을 때는 축적(踧踖)과 여여(與與)가 뒤섞인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踧踖은 10편 '향당' 제3장에서 조회가 있을 때 임금을 대하는 태도의 하나로 등장했습니다. 공손하고 삼가는 자세이니 誾誾보다 긴장감이 한 단계 더 높은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與與는 위엄 있고 여유로운 태도를 말합니다. 공손하고 삼가는 자세에서 다시 위엄을 보인다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그래서 침착하게 할 말을 다 한다는 뜻으로 새겨봤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게 뭘까요? 첫 번째 공자는 공적인 자리에서보다 사적인 자리에서 언행을 더 조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관직에 있을수록 “갑질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가장 자세를 낮췄던 겁니다. 공적 장소에서는 제후-상대부-하대부로 그 계급질서에 맞춰 태도를 달리 했습니다. 자신과 동등한 동료와는 유쾌하게 지냈지만 윗사람을 대할 때는 화락함 속에서도 정중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임금을 대할 때는 상대부를 대할 때보다 더욱 조신한 태도를 취했으나 결코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공자는 말을 못 하거나 어눌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말을 할 장소와 그렇지 않은 장소를 구별할 줄 알았으며 그 대상에 따라 말하는 태도를 달리 했을 뿐입니다. 지상의 척도(禮)에 따르되 시대정신(命)을 구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공론장에서 유창한 언변을 펼칠 수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논어’의 세계에서 지명(知命)과 지례(知禮) 만큼 지언(知言)이 중요함을 새삼 되새기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