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꽃, 알곡

9편 자한(子罕) 제22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싹은 돋아났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꽃을 피웠으나 알곡을 맺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子曰: “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

자왈 묘이불수자 유의부 수이불실자 유의부



공자는 ‘시경’의 시(詩)를 배울 때 3가지 효과 중 하나로 동식물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는 박물학적 지식의 증가를 꼽았습니다(17편 양화 제9장). 실제 시경의 시 삼백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합니다. 특히 식물과 관련해서 풍부한 표현이 많습니다.


시경의 주남 편 ‘도요(桃夭)’라는 시는 시집가는 신부를 어린 복숭아나무에 비유하며 꽃(華), 열매(實), 잎사귀(葉) 풍성하게 하듯 시댁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 찬합니다. 이 시의 구절을 따서 여자가 시집을 와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의가의실(宜家宜室)’ 또는 ‘의가지락(宜家之樂)’으로 표현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여기서 표현한 식물은 복숭아나무 같은 과실수가 아닙니다. 밭에서 자라는 곡식을 말합니다. 묘(苗)는 밭에 옮겨 심은 작물의 모(새싹)를 말합니다. 수(秀)는 본디 곡식의 이삭 부분이 늘어져 꽃이 핀 모양을 형상화한 한자입니다. 곡식은 그때가 가장 아름답다 하여 ‘빼어나다’는 뜻이 파생됐습니다. 실(實)은 열매이지만 이 경우는 곡식의 열매이니 알곡을 뜻합니다.


군자학의 단계를 苗-秀-實의 식물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 표현은 오늘날엔 전형적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춘추시대만 해도 참신한 표현 아니었나 싶습니다. 후대엔 무수히 많아졌지만 시경의 시 삼백이나 ‘논어’ 이전의 기록에서 화(華)와 실(實)의 비유는 있어도 苗-秀-實의 비유는 찾기 어렵습니다. 좋은 위정자가 되기 위해선 백성의 배를 채워줄 곡물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 아래 그 곡물의 성장과정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물의 하나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군자학에서 苗-秀-實의 단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苗는 군자학을 연마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군자학에 입문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秀는 군자학의 기초학인 육예(六藝)와 심화학인 지용인(知勇仁)를 두루 터득하고 통달한 단계를 말합니다. 實은 공직에 진출하여 그렇게 터득한 군자학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거치고 구체적 성과도 올리는 단계를 말합니다.


공자가 좀 더 애용한 표현을 빌리면 苗는 입문(入門), 秀는 승당(昇堂), 實은 입실(入室)의 경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비유 사이에는 어긋남도 존재합니다. 공자가 제자 중에서 가장 우수한 10명을 언급한 공문십철은 모두 입실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안연과 민자건은 자의건 타의건 공직 진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경우엔 입실의 경지에 들었지만 알곡을 맺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은 벼의 꽃입니다. 이렇게 곡식에 꽃이 핀 모습을 형상화한 한자가 秀입니다. 공자시대의 주곡은 벼보단 조나 기장이었으나 그 꽃사진을 못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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