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자한(子罕) 제21장 & 제20장
공자가 안연에 대해 말했다. “애석하도다! 나는 그가 나아가는 것을 보았어도 멈추는 것을 보지 못했다.”
子謂顔淵曰: “惜乎! 吾見其進也, 未見其止也.”
자위안연왈 석호 오견기진야 미견기지야
공자가 말했다. “말해준 바에 대해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사람은 안회일 것이다.”
子曰: “語之而不惰者, 其回也與.”
자왈 어지이불타자 기회야여
2개 장 모두 안연에 대한 공자의 평가인데 일맥상통합니다. 배움을 추구함에 있어 끊임없이 정진 또 정진했다는 것이며 공자가 가르침을 주면 한 번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는 찬사입니다. 공자가 죽고 나서 1000년 뒤 중국에 들어온 선불교의 용어를 빌리자면 21장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요, 20장은 ‘용맹정진(勇猛精進)’이라 할 만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나아갈 진(進)입니다. 공자가 자신의 페르소나와 같은 안연의 덕목으로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꼽았다는 것은 그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진보주의자임을 보여주는 단초의 하나입니다. 공자가 그토록 좋아했던 학문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지향합니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거나 과거에 배운 것에서 새로운 통찰을 끌어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실천해야 합니다. 부단히 배우고 익히고 궁구하기에 그것은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약속합니다. 그렇지 않고 멈춰있는 것은 곧 퇴보를 의미합니다.
공자는 군자학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요순과 은탕왕 주무왕과 주문왕, 주공 등 고대의 성인을 전범으로 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가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려 한 복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라는 오해를 사 왔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먼 고대를 강조했던 것은 첫째 그 자신이 그러한 과거의 예(禮), 사(史), 문(文)에 정통한 유(儒)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군자학은 그러한 고대의 제도와 역사에서 새롭게 길어 올린 온고지신의 지혜를 벼려낸 학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새로운 통찰이 담겨있으니 바로 무력(武力)이 아니라 문덕(文德)에 의한 통치로서 어진 정치에 대한 미래지향적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군자학에는 그런 어진 정치의 담지자가 될 군자를 과거와 같은 성군의 혈통이 아니라 도를 터득하고 덕을 쌓은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보적 발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공자가 고대를 강조한 또 다른 이유는 군자학의 이런 진취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 정당성의 근거를 고대에서 끌고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자가 그렇게 끌고 온 고대는 있는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었습니다. 공자가 꿈꾸던 미래가 투사된 새로운 고대였습니다.
군자학은 그렇게 고대의 예와 사와 문에 대한 연구로 탄생했지만 미래자향적인 진취적인 학문이었습니다. 과거에서 길어내 졌지만 미래지향적인 학문이었고 동시에 그런 진취성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전통’으로서 과거에 다시 의존해야 하는 역설적 학문이었던 겁니다. 어쩌면 공자의 무의식 속에서 안연이야말로 그런 군자학의 역설이 온축된 인물로 비치지 않았을까요?
공자보다 30세 이상 어렸던 안연은 공자와 군자학의 미래였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는 공자라는 과거를 투철하게 반영하는 미래라는 점에서 얼핏 과거지향적 미래로 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자는 결코 과거에 머무르는 인물이 아니었기에 그를 쫓는 안연 역시 끊임없이 전진 또 전진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안연은 과거와 미래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군자학의 역설을 상징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은 거북이보다 10배 빠른 아킬레스라도 거북이가 전진을 멈추지 않는 한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역설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안연이 아킬레스라면 공자는 거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공자라는 거북이가 전진을 멈추지 않으면 안연이 아무리 빨라도 그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즉 군자학의 밝은 미래가 군자학의 과거와 현재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공자 역시 안연과 자신 사이의 이런 역설적 관계를 감지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스승을 따라잡기 위해 조금의 나태함도 허용하지 않고 전진 또 전진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기에 일찍 요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죄의식이 수반됐을 가능성도 큽니다. 따라서 ‘석호(惜乎)’라는 공자의 탄식에는 단순히 안연의 재주가 아깝다는 것을 넘어서 안연과 자신의 역설적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