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이다” 여겨라

9편 자한(子罕) 제19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비유컨대 산을 쌓다가 완성까지 한 삼태기의 흙만 남았음에도 거기서 그만둔다면 내가 그만둔 것이다. 비유컨대 땅을 평평하게 골라 길을 만들 때 한 삼태기의 흙을 부었을 뿐인데도 전진할 수 있다면 내가 나아간 것이다."


子曰: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자왈 비여위산 미성일궤 지 오지야 비여평지 수복일궤 진 오왕야



해독이 쉽지 않은 글입니다. 먼저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개의 대조적 상황이 등장합니다. 산을 쌓을 때 한 삼태기의 흙만 더 부으면 완성되는 순간 그만두는 것과 땅을 골라 평평한 길을 만들 때 한 삼태기의 흙만 부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핵심은 한태기의 흙으로 전자는 산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고 후자는 길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전자의 상황은 ‘서경’에 등장합니다. 주무왕은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에 성공한 뒤 선정에 힘쓰다 어느 순간부터 나태해집니다. 이때 무왕의 사촌동생 소공(희석)이 올린 상소에 ‘위산구인 공휴일궤(爲山九仞 功虧一簣)’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소공은 무왕의 동생 주공(희단)과 더불어 주나라 건국 이후 그 기틀을 다진 양대 신하로 꼽힙니다. ‘작은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마침내는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아홉 길 높이의 산을 만듦에 있어서,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일을 망치게 됩니다.’


여기서 명확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위산(爲山)의 산은 그냥 산이 아닙니다. 치수(治水)를 위해서나 공성(攻城)을 위해 높이를 정해두고 쌓는 인공산입니다. 한길은 사람 키만큼의 높이이니 170㎝라고 한다며 아홉 길이면 높이가 15m가량 됩니다. 이런 인공산은 높이가 중요한데 그 높이에 이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예를 들어 공성전을 위한 산이라면 성보다 높아야 하는데 한태기 흙을 더 붓지 않아 그 성보다 높아지지 못한다면 그 산을 쌓는 이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공자는 이런 전거에 영감을 받아 산을 쌓는 상황과 길을 만드는 상황을 대비시키면서 한 삼태기(一簣)의 흙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문학적 비유를 동원한 진짜 이유는 그다음에 등장합니다. 바로 ‘오지야(吾止也)’와 ‘오왕야(吾往也)’라는 표현입니다.


산을 쌓건 길을 만들 건 그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헌데 아주 작은 차이로 그 성패가 엇갈리는 순간이 왔을 때 무리 뒤에 숨지 말고 나 자신의 선택으로 그러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럿이 함께 도모한 일이 못되면 내 탓이라 여기고, 잘 되면 내게 득이 되는 것이나 함께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에는 두 가지 교훈이 함축돼 있습니다. 첫째 주체적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산을 쌓고 길을 만드는 나랏일에 동원돼 일을 할 때에도 주인의식이 필요하듯 세상만사를 처리함에 있어 아주 작은 일에도 내 선택과 내 책임이란 생각 아래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고대에 산을 쌓고 길을 놓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왕이나 제후 정도 돼야 가능했습니다. ‘위산구인 공휴일궤’라는 상소의 대상이 주나라의 천자인 주무 왕이었음을 상기해보십시오. 그런데 그런 일에 동원되거나 잘해야 관리‧감독을 맡을 사람들에게 “자기 일이라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군자라면 자신을 임금과 동격으로 놓고 생각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실상 '내가 왕이다(五王也)'라고 생각하라는 함의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공자 사상에 계급혁명의 씨앗이 숨겨져 있음이 재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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