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와 주자가 간과한 것

9편 자한(子罕) 제17장

by 펭소아

공자가 냇가에서 말했다. “가버리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자재천상왈 서자여사부 불사주야



다시 시적인 표현이 등장합니다. ‘천상(川上)’이란 한자표현은 내의 위가 아니라 냇가를 말합니다. 냇가에 앉아 쉬다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살을 보며 공자가 부지불식간에 내뱉은 말입니다. ‘논어’는 왜 이를 채록한 것일까요?


‘논어’를 경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성인인 공자가 허투루 말할 리가 없다 생각하여 여기에 다양한 의미부여를 했습니다. ‘맹자’ 이루장 하(8편)에는 이에 대한 맹자의 해석이 나옵니다.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가기 위해선 그 수원(源泉)에서 끊임없이 물이 솟아야 함을 지적한 것이니 만사에 근본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표현이라는 풀이입니다. 주희는 천지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화생하는 도의 원리를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우리네 인생사에 비유한 것으로 봤습니다.


이와 달리 20세기 중국 고전학자인 양백준은 단순히 세월이 빨리 지나가고 다시 오지 않음을 한탄한 단순한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현대 중국의 정치사상가 리쩌허우는 이 장이 ‘논어’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고 더 심오하게 풀어냈습니다. 그는 무(無)를 강조한 도가사상과 공(空)을 중시한 불교가 ‘고요함’을 본체로 삼는 반면 유가사상은 실천과 행동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움직임’을 본체로 삼는 사상이라 말합니다.


이 장에서 공자의 발언은 물의 흐름이든 시간의 흐름이든 끊임없는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객관적 시간이란 그렇게 흘러가는 것(逝者)입니다. 고요함의 사상은 거기서 인생무상과 허무를 끌어냅니다. 반면 움직임의 사상은 그렇게 무(無)화될 것에 정서를 투사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있음(有)을 끌어낸다는 것이 리쩌허우의 정서본체론입니다.


그렇다면 흘러가는 시냇물에 공자가 투영한 정서는 뭐였을까요? 정서본체론에 따르면 인생무상의 감정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배운 예(禮)와 사(史)와 문(文)을 통해 새롭게 벼려낸 군자학을 현실에 적용해 어진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꿈이 무산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아니었을까요?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知其不可而爲之者),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하려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적막감입니다. 공문의 제자들도 이에 격동하여 이를 ‘논어’에 실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는 사르트르와 카뮈가 말한 실존 체험과 일맥상통합니다. 실존주의는 객관적으로 무의미하고 공허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살아있음에 대한 뚜렷한 자각을 지닌 실존으로 거듭날 때 진정한 삶의 의미가 형성됨을 강조합니다. 끝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가 그 불가능성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바위 밀기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우는 것처럼.


이런 강렬한 실존 체험이야말로 리쩌허우가 말한 정서본체론의 핵심 아닐까요? 도가의 인생무상론이 일반적 존재 감각이라면 유가의 실존체험이라고 구별 지을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훗날 북송의 시인 소동파는 ‘적벽부’라는 시에서 물과 달에 대해 아느냐는 질문에 ‘논어’의 이 구절을 차용해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가버리는 것은 이와 같으니 일찍이 가버림이 없었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니 마침내 줄고 느는 것이 없다네(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공자가 냇가에서 느낀 적막감을 장강으로 확장하며 웅혼한 시 세계를 펼쳤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로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하지만 소동파는 공맹의 제자임을 자처했으나 이 대목을 읽어보면 공자의 실존 체험을 읽어내지 못하고 도가의 무(無)나 불가의 공(空) 같은 고요함의 사상에 입각해 ‘논어’를 파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학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었던 남송의 주희는 이런 차이를 명징하게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소동파의 유학 이해를 그토록 배척한 것입니다. 그런 주희 조차도 이 장의 내용이 천지화생의 도의 원리를 읊은 것이라고 엉뚱한 해석을 내놓는데 그쳤습니다. 텍스트에만 취해 공자의 구체적 삶에 대한 감각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주희에게 이런 공자의 실존 체험의 감각이 부족했음을 우리는 그가 남긴 시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은 이루기 어렵나니(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라는 주희의 그 유명한 ‘권학가(勸學歌)’ 구절에서 우리는 공자의 실존 체험이 통속화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무상을 노래한 소동파의 적벽가에 비해 주희의 권학가가 공자의 삶의 감각에 더 가까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기엔 절박한 실존 체험이 누락돼 있습니다.


주희는 이와 별도로 ‘권학문(勸學文)’이란 산문도 남겼는데 거기서 이 장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을 발견합니다. ‘일월은 가버릴 뿐 세월이 나를 늘여주지 않으니(日月逝矣 歲不我延)’라는 구절입니다. 세월이 나를 늘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가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다음 구절은 ‘오호 늙었으니 이 누구의 허물인가(嗚呼老矣 是誰之愆)입니다. 여기에 공자가 이루려고 했던 불가능한 것을 이루려는 꿈이 투영됐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글은 이런 통속적 구절로 시작됩니다.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하지 마라/ 올해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하지 마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공자의 군자학은 당대의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공동체 지향의 정치를 꿈꿨습니다. 주희의 주자학은 그런 군자학을 심오해보이지만 결국 개인적 득도 내지 입신양명을 위한 학문으로 위축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실존 체험을 철저히 결여한 채 통속적 수행론으로 귀결되고 만 것입니다. 이 차이를 꿰뚫어야 비로소 공자에 대한 중세적 이해를 뛰어넘어 21세기적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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