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짊 안에서 도와 덕이 작동하는 법

7편 술이(述而) 제26장

by 펭소아

공자는 물고기를 잡을 때 낚시로 잡지 그물로 잡지는 않았다. 새를 잡을 때는 화살을 쏴서 잡되 잠든 새를 겨누진 않았다.


子釣而不網, 弋不射宿.

자조이불강 익불사숙



어짊이 왜 덕(德)과 도(道)의 합치이자 교차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어짊이 최고의 덕이라면 물고기 낚시도 하지 말고 새 사냥도 해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체의 살생을 금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어짊에는 과학적 사고인 도가 함께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살생 그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되 최소한으로 자제하는 지혜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본디 낚시나 사냥의 이유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다 종교적 제의와 정치적 의례의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공동체를 이끌 군자라면 백성의 배고픔을 덜어주기 위해서 또 제의와 의례를 위해서라 낚시와 사냥이 불가피합니다. 그것이 도입니다. 하지만 그런 불가피한 살생을 해야 할 때도 분별 있게 하는 것이 덕입니다.


원문의 강(綱)에 대해서는 긴 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매달아 놓은 주낙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낚는다와 흐르는 물을 가로지르는 어망으로 한꺼번에 건져 올린다는 뜻이 엇갈립니다. 물고기를 떼로 잡는다는 취지를 강조하는 뜻에서 그물로 잡는다로 풀었습니다. 익(弋)은 실이 달린 화살인 주살을 말합니다. 잠든 새를 겨누지 않았다는 것은 날아다니는 새만 노리고 둥지에서 쉬는 새를 노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낚시와 그물, 날아다니는 새와 둥지서 쉬는 새. 물고기와 새를 잡는 방법만 놓고 보면 전자가 어렵고 후자는 쉽고 생산적입니다. 최소비용, 최대효과를 겨냥하는 근대적이고 경제적 사고라면 당연히 후자를 취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를 과학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공자가 생각하는 도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생명을 함부로 취하는 것은 세상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거기엔 물고기와 새에게도 인간의 마음을 고스란히 투영한 덕의 발현도 발견됩니다. 물고기를 떼로 잡아버리면 그 대가 끊기게 됩니다. 둥지에 있는 새를 사냥하면 그 가족이 보는 눈앞에서 지아비나 지어미를 죽이는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훗날 맹자가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어짊의 이러한 덕의 측면을 부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짊에는 측은지심에 해당하는 덕뿐 아니라 세상 이치를 꿰뚫는 도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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