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술이(述而) 제18장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해 물었는데 자로가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 대답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됨이 심취하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우면 근심을 잊고, 이제 곧 노년이 닥치는 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일 뿐이라고. “
葉公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섭공문공자어자로 자로불대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자왈 여해불왈 기위인야 발분망식 낙이망우 부지노지장지운이
섭공은 초나라 명신 심제량을 말합니다. 그는 채나라에 멸망당한 심나라 공실의 후손으로 채나라의 영토였다가 초나라에게 넘겨진 섭 땅을 다스린다 하여 섭공으로 불렸습니다.
천하주유 시기 공자는 채나라와 진나라 일대를 3년여 떠돌다 초나라 소왕의 초빙을 받아 초나라를 방문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이 무렵 공자와 섭공의 만남이 이뤄진 듯합니다. 섭공의 질문에 공자가 답하는 내용이 ‘논어’에 두 차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초소왕의 초청도 섭공의 추천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장의 내용은 그전에 자로가 섭공을 먼저 만나 교섭하고 돌아온 뒤의 대화 아닐까 합니다. 섭공이 공자에 대한 호기심에 어떤 사람이라고 물었는데 자로가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혹자는 섭공이 제후의 신하 주제에 제후만이 쓸 수 있는 공(公)이라는 칭호를 쓴 것이 못마땅해서라고 주장합니다. 도덕주의적 궤변입니다.
남방의 초, 오, 월의 제후는 주나라 체제로부터 독립적 존재임을 과시하기 위해 춘추시대부터 이미 왕을 칭했습니다. 심제량은 그런 초나라 체제에서 제후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주나라 체제에서도 심나라 공실의 적통이란 점에서도 공을 칭할 자격이 됩니다. 무엇보다 만일 그런 호칭이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스스로 왕을 칭한 초소왕의 초청에 공자가 응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입니다.
게다가 자로는 공자에 비하면 법가에 가까운 현실적 인물입니다. 정무적 판단능력이 탁월해 제후에게 반기를 든 필힐이나 공산불요 같은 인물이 공자를 초청했을 때 그에 응하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위나라와 같은 작은 나라에서라도 공자가 발탁되는 것이 긴요하다 여겼으니 중원 밖이라 하더라도 초나라와 같은 큰 나라에 기용되는 것을 반대할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면서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라고 너스레를 떨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공자가 이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만나봤자 별 볼 일 없는 사람에 불과한데 왜 실상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느냐고 지청구를 날린 것입니다. “화가 나면 먹는 것도 잊고, 즐거우면 걱정거리도 잊어서 노년이 닥쳐왔음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며 스스로를 풍자한 것입니다. 요즘 말로 '철이 덜 들어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낮춰 표현한 것입니다.
원문의 발분(發憤)에서 분(憤)은 꽃이 피어나듯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표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후대엔 주로 화를 내다는 뜻으로 많아 쓰이지만 공자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반면 마음 속 흥취가 솟아나 무언가에 잔뜩 몰입하는 경우는 많았습니다. 순임금이 지은 ‘소(韶)’라는 음악에 심취해서는 3개월이나 고기를 먹어도 그 맛을 몰랐고, 주역에 심취해서는 죽간을 연결한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고 또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화내다는 뜻보다는 심취하다는 뜻으로 풀어봤습니다.
공자가 우스갯소리처럼 한 이 발언 속에 공자의 진면목이 담겨 있습니다. 뭔가에 꽂히면 어린이처럼 몰입해 노년에 닥쳐올 죽음까지 잊는다는 그 발언에서 ‘생에 대한 긍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생로병사의 번뇌에 빠져 출가를 감행한 싯다르타에게서 발견되는 ‘생에 대한 환멸’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리쩌허우는 공자의 이런 태도가 삶에 대한 중국인의 낙관주의적 태도의 원형이 됐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보다는 진정한 마음인 진심(眞心)이 곧 어린이의 마음인 동심(童心)이라고 말한 이탁오의 탁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공자에게 죽음의 공포마저 잊고 고단한 삶을 긍정하게 해 준 것은 맑고 아름답고 진실한 것에 어린이처럼 심취하는 마음임을 이탁오는 꿰뚫어 본 것입니다.
이런 공자의 삶의 태도를 두 글자로 압축한 단어가 바로 도락(道樂)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취미와 잡기를 뜻하지만 본디 도에 심취한 즐거움이란 뜻의 단어입니다. 공자는 발분망식했다 했건만 정반대로 먹는 것에 심취하는 식도락가들이 많아진 현실에서 이 단어의 전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원래의 도락에 가장 근접한 삶을 산 사람이 바로 공자였습니다. ‘흥어시 입어례 성어락(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에서 보듯 바로 공자가 심취했던 시와 예와 악을 엮어서 훗날 주자가 도학이라 칭한 군자학을 빚어냈으니 과연 도락에 있어 공자를 능가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