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술이(述而) 제17장
공자가 늘 말하던 바는 시와 서 그리고 예를 행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으니 모두 우아한 말이었다.
子所雅言, 詩書執禮, 皆雅言也.
자소아언 시서집례 개아언야
아언(雅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장입니다. 하나의 단어로서 아언은 ‘바른말’이란 뜻과 여기서 나온 ‘표준어’라는 뜻을 지닙니다. 아(雅)가 형용사일 때는 맑다, 우아하다는 뜻을 갖고 부사어로 쓰이면 늘, 항상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첫 구절의 경우 아는 부사어, 언은 동사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공자가 늘 말하던 바’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마지막 구절의 아언은 형용사+명사의 구조가 자연스럽습니다. 이 경우 ‘표준어’라는 해석은 어색하고 ‘바른말’이나 ‘우아한 말’로 풀어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저는 도덕적 잣대가 작용하는 ‘바른말’보다 ‘우아한 말’로 풀어봤습니다.
이를 적용해 풀면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공자가 평소 입에 달고 산 것이 시경에 수록된 시요, 서경에 기록된 옛 정사(政事)에 대한 이야기요, 예의 실천에 대한 이야기인데 들어보면 모두 아취가 넘치는 말이었다.’
이는 8편 태백 제8장에 등장한 ‘시로써 일어나고, 예로써 서며, 악으로써 이룬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는 공자의 발언과 궤를 같이 합니다. 다만 악 대신 서가 등장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군자학에서 시는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징검다리와 같습니다. 이렇게 타자에 대해 공명할 줄 알게 된 사회적 자아는 예를 익힘으로써 정치적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예는 곧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운영 원칙을 터득할 때 실천에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자에 대한 이해를 격동시키는 시와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질서를 규정하고 운용하는 예가 예술적 조화를 이룬 것이 곧 악입니다. 하지만 악은 말로써 표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기 연주와 노래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그럼 말로써 표현되는 다른 걸로 또 뭐가 있을까요? 공자를 관찰한 제자들에게 포착된 것은 올바른 정치에 대한 옛 성군의 말씀들이니 하은주 시대 성군의 말씀을 기록한 서경의 내용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서경은 성현의 가르침을 문자화 했다는 점에서 글(書)이요, 옛이야기라는 점에서 역사(史)요, 좋은 정치를 구현함에 있어 물리적 힘이 아니라 이야기의 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문(文)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아(古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는 본디 아취가 넘치는 말이요, 예는 우아한 전통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항시 시, 서, 예를 말하니 그 말이 어찌 우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P.S. 다산 정약용은 이 장의 아언을 모두 상언(常言), 곧 평상시 늘 쓰는 말로 풀었습니다. 그가 관용적 한자 표현 중에서 원래의 뜻과 달리 쓰이는 것을 찾아서 바로 잡은 책의 제목을 ‘아언각비(雅言覺非)’로 삼은 것도 그런 해석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상용 한문 표현 중에서 잘못된 것을 일깨운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