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옹야(雍也) 제26장
재아가 물었다. “어진 사람이라면 누군가 그에게 우물 안에 어짊이 있다고 하면 우물로 뛰어들까요?”
공자가 말했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느냐? 군자를 가서 볼게 만들 순 있어도 빠뜨릴 수는 없다. 속일 순 있어도 바보로 만들 순 없다.”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 ‘井有仁焉’, 其從之也?”
재아문왈 인자 수고지왈 정유인언 기종지야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 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자왈 하위기연야 군자 가서야 불가함야 가기야 불가망야
재승박덕의 대명사인 재아의 질문이 참 고약합니다. 주희는 우물에 빠잔 것이 어짊(仁)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풀었습니다. 하지만 재아의 질문은 15편 ‘위령공’ 제35장에 등장하는 공자의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나는 물이나 불에 뛰어들었다가 죽는 사람은 봤어도, 어짊에 뛰어들었다고 죽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는 발언입니다. 어진 사람이라면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마다하지 않을 터이니 우물 속에 어짊이 있다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지 않겠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앞서 ‘물불 안 가리고 좋은 것’에서 살펴봤듯이 ‘어짊 속에 뛰어들다’ 또는 ‘어짊을 밟고 산다’에 해당하는 ‘도인(蹈仁)’은 ‘어진 정치(仁政)의 혜택을 누리다'로 해석할 때 그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우리네 삶에 꼭 필요한 물과 불이 넘쳐나게 되면 큰 재앙이 되지만 어진 정치는 아무리 넘쳐나도 해가 되기는커녕 득이 된다고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재주가 남달랐던 재아가 이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어짊에 뛰어든다는 표현을 은근슬쩍 변주해 “우물 안에 어짊이 있다면 어진 사람은 그걸 구하려고 뛰어들지 않겠느냐”는 교묘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재아의 질문이 변화구라면 공자의 답은 직선타로 홈런을 날린 것과 같습니다. 어짊에는 현명함이 녹아있기에 그런 거짓 함정에 농락당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답변 중 ‘군자를 속일 순 있어도 바보로 만들 순 없다(可欺也, 不可罔也)’는 ‘맹자’에서도 변주됩니다. 순임금이 함정을 파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복동생 상(象)이을 용서하고 포용해줬다는 맹자의 말에 제자인 만장이 “상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것을 알면서 용서한 것은 거짓된 마음 아니냐?”라고 질문합니다. 맹자는 상이 “형님 생각에 마음이 울적했다”는 형제간의 도리에 부합하는 말과 함께 반성의 기미를 보였기에 순임금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용서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를 이치에 맞는 말로 속일 순 있어도 도에 부합하지 않는 말로 바보로 만들기는 어렵다(故君子可欺以其方, 難罔以非其道).”
쉽게 말하면 어진 사람 또는 군자를 그럴듯한 말로 잠시잠깐 속이는 것은 가능해도 세상 이치에 맞지 않은 궤변으로 속일 순 없다는 뜻입니다. 공자의 이 발언은 두 가지를 겨냥한 것입니다. 첫째는 우물 속에 어짊이 있다는 말로 군자를 농락하는 것이 불가함을 반박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교묘한 말재주로 스승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비꼬려 하는 재아를 꾸짖은 것입니다. 라서 마지막 발언에는 “재아야, 네가 아무리 뛰어난 말재주로 나를 갖고 놀려 해도 나는 넘어가지 않으니 허튼 짓 그만 하거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함께 담겼다고 봐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