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공야장(公冶長) 제1장
공자가 공야장에 대해 말했다. “사위로 삼을 만한 사람이다. 비록 검은 포승줄에 묶여 구속된 적이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다.” 그러고는 딸의 배필로 삼았다.
子謂公冶長: “可妻也. 雖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
자위공야장 가처야 수재누설지중 비기죄야 이기자처지
공야장(公冶長)은 성이 공야(公冶)이고 이름은 장(長), 자가 자장(子長)입니다. ‘중니제자열전’은 제나라 사람이라 하고 ‘공자가어’는 노나라 사람이라고 합니다. 박학다식하고 재덕을 겸비해 노나라 군주가 여러 차례 대부(大夫)로 청했지만 벼슬길에 한 번도 나서지 않고 공자의 유지를 계승해 교육에만 전념했다고 합니다.
공자의 사위임에도 ‘논어’에는 이 장에서만 딱 한 번 등장합니다. 남북조시대 양나라 문인 황간(黃侃‧488~545)의 ‘논어의소(論語義疏)’에 공야장이 새소리를 해독하는 재주가 있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위(衛)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는 도중 새들이 “청계(淸溪)에 죽은 사람이 있으니 그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지저귀는 소리를 들은 그는 길에서 통곡하는 노파를 만나 연유를 묻습니다. 노파는 외출한 아이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아 죽은 듯한데 시체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는 새소리를 기억해 내고 청계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알려줍니다. 아이의 시체를 발견한 노파가 고을 원님에게 알립니다.
원님은 공야장이 살인을 저질렀기에 그 장소를 안 것 아니겠냐며 새소리를 듣고 알았다는 그를 잡아 옥에 가뒀습니다. 60여 일이 지나 공야장이 옥에서 참새 소리를 듣더니 빙그레 웃자 원님이 참새가 뭐라 했냐고 묻습니다. 공야장은 “백련수 아래 수레가 뒤집혀서 곡식이 쏟아졌고, 소들도 뿔이 부러져 꼼짝 못 하니 가서 다 쪼아 먹자”고 했다고 답합니다. 사실을 확인해 보니 맞아떨어져서 공야장은 풀려나게 됩니다.
이에 따르면 공야장이 포승줄에 묶여 옥살이를 했던 것이 억울한 오해의 산물이라는 것이 해명됩니다. 원문의 누설(縲絏)은 당시 죄인을 체포할 때 쓰던 검은 포승줄에 묶인 것을 말합니다.
새소리를 듣고 특정 장소까지 맞춘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습니다. 다만 공야장이 공자처럼 동식물학에 조예가 깊었고 그를 토대로 사람의 시체를 찾는 데 도움을 줬지만 그것이 오해를 불러 억울한 옥살이를 했을 것이라고 미뤄 짐작할 순 있습니다. 공자가 사위로 삼은 이유도 그런 남다른 해박함을 높이 평가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벼슬길에 나서길 거부했으니 군자학의 비의를 전수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석서들은 사위인 공야장과 조카사위인 남용을 비교하면서 공자가 역시 성인이다 보니 자신의 딸보다 조카딸에게 더 좋은 배필을 찾아줬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에 대한 제한된 정보만으로 섣불리 판단한 것이라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남용이 처세에 더 능할 순 있지만 학문은 공야장이 더 깊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보다는 공자가 사람을 판단할 때 세속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장의 초반부 인물평의 대상이 된 공야장, 남용, 자천은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뭔가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공야장은 전과자, 남용은 겁쟁이, 자천은 장애인이라 손가락질받을 만합니다. 공자는 그런 세속적 판단에 물들지 않고 그들의 내면에 갖춰진 진가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계급, 권력, 부, 출세가능성 같은 외적 요소가 아니라 그 사람됨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 바로 공자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