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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Feb 03. 2021

군자의 변신은 무죄

19편 자장(子張) 제9장

  자하가 말했다. “군자는 세 번의 변화가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있고, 가까이서 접하면 온화하며, 그 말을 들으면 매섭다.”


  子夏曰: 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

  자하왈   군자유삼변    망지엄연   즉지야온  청기언야려          



  자하가 생각하는 이상적 군자상입니다. 3개의 키워드로 요약됩니다. 엄숙할 엄(儼), 따뜻할 온(溫), 갈 려(厲)입니다. 첫 번째는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을 갖췄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따뜻한 온기를 지녔다는 소리입니다. 세 번째는 엄하다, 매섭다는 뜻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일맥상통합니다. 두 번째만 결이 다릅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지만 가까이서 접해보면 참 인간적인 정이 많더라. 하지만 다시 자신의 생각을 토로할 때는 매섭게 몰아쳐 버텨내기 힘들 정도더라.          

  

  많은 이들이 이를 자하가 접한 공자의 진면목이라고 유추합니다. 공자는 키가 9척으로 2m가 넘는 거구였습니다. 거기에 질서와 조화를 강조하는 예(禮)의 화두를 천착했으니 당연히 카리스마가 넘쳤겠지요. 하지만 막상 가까이서 접하면 인간미가 넘쳤을 겁니다. 어질 인(仁)을 평생의 화두로 삼은 사람이었으니 인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요, 또 ‘시경’의 시 삼백 편을 줄줄이 외우는 사람이 얼마나 정감 넘치는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잔뜩 얼어붙었던 마음을 풀고 곁을 주려는데 다시 거칠고 강력한 폭풍우가 몰아닥칩니다. 그가 입을 열자 엄청난 내공의 말폭풍이 거세게 일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연마된 웅숭깊은 사유와 통찰이 세찬 바람 되어 몰아닥치고 평소 생각도 못했던 질문이 거센 빗줄기가 되어 온 몸을 때려댑니다. 첫 번째의 엄(嚴)보다 더 힘겹게 다가섭니다.       

  

  이것이 이 구절에 대한 드라마틱한 해석입니다. 먼저 위풍당당한 겉모습에 반하고, 따뜻한 인간미에 두 번 반하고, 마지막으로 고산준령과도 같은 그의 정신세계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겁니다. 강했다 부드러웠다가 영혼을 흔드는 강렬함으로 상대를 휘어잡는 존재, 그게 바로 참군자의 진면목이란 것이지요.     

  

  이는 논어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지명(知命), 지례(知禮), 지언(知言)과 상응하는 면이 있습니다. 시대정신에 투철한 존재이니 위엄이 있고, 지상의 척도를 터득한 사람이니 유연하며, 마지막으로 상대를 설복할 언어에 정통한 사람이니 상대를 휘어잡을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자하는 스승의 정신세계보다 그것에서 우러나는 이미지에 좀 더 집착한 면이 없지 않은 듯합니다. 자하 학파에 대한 비판을 보면 항시 관을 높이 쓰고 의관과 표정을 단정히 하되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을 정도로 우쭐대고 쌀쌀맞다는 표현이 되풀이 해 등장합니다. 이미지화된 군자 상에 다가서려 하다 보니 위엄 있는 외양에 너무 집착한 탓입니다. 또 심오한 사상이 무르익지 않은 채 경전의 말씀만 되뇌는 단계에 머무는 이들이 많다 보니 차라리 침묵을 지키라고 가르친 듯합니다.      

  

  하지만 군자유삼변의 그 특징들은 외양을 가꾼다고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군자로서 도와 덕을 갖췄을 때 내면에서 흘러나와 그러한 형상을 갖추게 되는 겁니다. 지명, 지례, 지언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인데 후대에 갈수록 그 외양에만 집착하다 보니 그런 비판을 초래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미지 변화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런 변화를 추동하는 내적 원동력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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