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일이관지

4편 이인(里仁) 제15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증참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모두를 꿰뚫는다.” 증자가 “예!”라고 답했다.

공자가 나가자 공문의 제자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증자가 말했다. ”스승님의 도는 충서일뿐이다.“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자왈 참호 오도일이관지 증자왈 유

子出門人問曰: “何謂也?”

자출문인문왈 하위야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증자왈 부자지도 충서이이의



하나로써 모두를 꿰뚫는다는 뜻의 일이관지(一以貫之)는 '논어'에 두 차례 등장합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공자와 자공의 대화(15편 위령공 제3장)에서 등장하고 다시 이 장에서 공자와 자여(증자)와 대화 속에서 등장합니다.


자공과 자여는 여러 모로 대비되는 제자입니다. 자공이 제 계열 제자의 막내격이라면 자여는 자 계열 제자의 막내격입니다. 자공이 공문에서 영특함으로 1,2위를 다퉜다면 자여는 공자로부터 대놓고 노둔하다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자공은 공문의 제자 중에서 가장 뚜렷한 활약을 펼치며 부귀영화를 누리다 죽은 반면 자여는 사후에 높은 평가를 받는데 후대로 갈수록 더 추앙받게 됩니다.


자공은 눈부신 외교력과 현란한 말솜씨로 오나라에게 멸망 당 할 뻔 한 월나라와 제나라의 전면적 침공을 받을 위기에 처한 노나라를 구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대부 반열에 올랐습니다. 또 정치에서 물러난 뒤에는 장사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는 빈털터리로 떠났으니 그 많은 재산을 공문의 제자들이 군자학을 널리 보급할 수 있게 썼을 것이란 추론을 낳게 하는 인물입니다.


반면 자여는 절차탁마 대기만성의 노력으로 공자 사후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에서 공자 학맥의 정통 계승자로 존경을 받았으나 대부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습니다. 대신 공자의 손자인 공급(자사)이 그의 제자가 되고 그 학맥을 맹자가 계승하면서 공문에서 위상이 공문십철의 반열로 올라가게 됩니다. ‘대학’과 ‘중용’은 원래 ‘예기’에 편입돼 있었는데 ‘대학’은 자여가, ‘중용’은 자사가 쓴 것이라는 재평가와 더불어 ‘논어’, ‘맹자’와 더불어 4서로 꼽히면서 안연을 제외한 공문십철을 제치고 공문의 ‘넘버 3’로까지 위상이 격상됩니다.


공자가 이렇게 대비되는 자공과 자여에게 동일한 화두를 던진 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군자학은 치평의 도에 심취한 치평학과 수제의 덕에 치중한 수제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공이 치평파라면 자여는 수제파입니다.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는 치평과 수제를 하나로 꿰뚫는 것이니 곧 도와 덕의 합일로서 어짊을 말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 제 해석입니다. 어짊은 양날의 검이니 그 한쪽 날로는 치평에 치우쳐 박학다식을 추구한 자공을 베고 또 다른 날로는 수제에 치우쳐 일목요연을 추구한 자여를 벤 것입니다.


문제는 자여가 스승의 일갈을 잘못 이해한 데서 발생합니다. 그것이 그의 노둔함 때문인지 아니면 선택적 집중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스승의 가르침을 자기식대로 해석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충실한 충(忠)과 타인을 포용하는 서(恕)라는 수제학적 화두가 공자가 말하는 일이관지의 핵심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공문의 제자들에게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자여의 학맥을 계승한 자사와 맹자에 의해 객관적 세계 이해를 추구하는 도의 날은 둔탁해진 대신 도덕심성론 중심의 덕의 날만 날카로워집니다. 그렇게 도를 삼켜버린 덕에 의해 어짊은 양날의 검이 아니라 덕의 외날만 서슬 퍼렇게 선 도(刀)가 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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