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악정치에서 악이 담당하는 것

3편 팔일(八佾) 제23장

by 펭소아

공자가 노나라 궁중악대장에게 음악에 대해 말했다. “음악 그것에 대해 알만 하게 됐습니다. 시작하면 여러 소리가 어우러지다가, 뒤이어 저마다의 소리가 순정하게 제 소리를 내면서 제 빛을 발하나니, 어느덧 실타래처럼 풀어진 끝에 완성됩니다."


子語魯大師樂曰: “樂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자어노대사악왈 악기가지야 시작 흡여야 종지 순여야 교여야 역여야 이성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공자의 음악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학자 중에 공자만큼 음악에 심취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이에 대한 주석이 중구난방입니다. 동양의 오음계와 여섯 가지 가락을 뜻하는 오음(五音)과 육률(六律)이 등장하고 그 기본 악기편성인 삼현육각(三絃六角)이 어지러이 등장합니다.


이럴 땐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논어’에 이 대목이 실린 이유가 뭘까요? 정치에서 예악의 역할을 반영하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가 공동체의 질서 구축을 담당한다면 악은 공동체의 화합과 통합을 담당합니다. 그러한 악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내용을 풀어봅니다.


핵심은 흡(翕) 순(純) 교(皦) 역(繹) 4개의 한자에 있습니다. 翕은 합한다는 뜻이니 여러 소리가 어우러지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純은 순수하다는 뜻이니 그렇게 어우러진 소리 중에서 개별적 소리가 저마다의 순정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皦는 옥석이 깨끗하고 환하게 빛을 발하는 것을 말하니 그 소리가 저마다 빛을 발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繹은 실타래를 푸는 것을 뜻하니 하나의 실패에 어우러졌던 형형색색의 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다 실타래가 다 풀리듯 시나브로 종지부를 찍는 것에 비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공자가 여기서 말하는 악은 사람의 목소리를 포함해 여러 악기로 이뤄진 합주를 뜻합니다. 그 대화상태가 노나라 궁중악대장이란 점도 이를 뒷받침하니 궁중악대장은 주로 합주를 선도하고 조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노나라 악대장은 8편 ‘태백’ 제15장과 18편 ‘미자’ 제9장에 등장하는 대사(大師) 지(摯)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자가 여기서 말하는 합주의 묘미는 예악의 정치가 백성들의 화합과 통합을 이끌어낼 때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정치란 예를 통해 형형색색의 백성을 하나의 실타래로 묶어내되 악을 통해 그것을 풀어냄에 있어서는 조화를 이루되 저마다의 개성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繹에 있습니다. 예가 하나의 실타래에 형형색색의 백성을 감아두는 구심력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악은 결국 그 실타래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원심력의 발휘라고 풀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로 매조졌던 것을 악으로 풀어낸다고 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그것이 감흥을 주기 위해선 동일 선율을 동일한 박자로 풀어내되 개별 악기가 저마다의 개성을 살리는 변주를 허용해줘야 함이 강조된 것입니다. 비슷한 뜻을 지닌 純과 皦가 반본적으로 등장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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