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팔일(八佾) 제22장
공자가 말했다. “관중은 그 그릇이 작았도다!”
어떤 이가 물었다. “관중이 검소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관 씨는 집을 세 채나 갖고 있었고 가신의 수가 많아 겸직하는 법이 없었으니 어찌 검소했다 하겠는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나요?”
공자가 말했다 “제후여야 가림벽을 세울 수 있는 법이거늘 관 씨 역시 가림벽을 세웠다. 제후여야 제후 간 우호를 다지기 위해 두 기둥 사이에 잔을 엎어두는 잔대를 설치할 수 있는 법이거늘 관 씨 역시 잔대를 설치했다. 관 씨가 예를 안다고 한다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는가?”
子曰: “管仲之器小哉!”
자왈 관중지기 소재
或曰: “管仲儉乎?”
혹왈 관중검호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왈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연즉관중지례호 왈 방군수색문 관씨역수색문 방군위양군지호 유반점 관씨역유반점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관씨이지례 숙부지례
이 장의 내용만 보면 관중은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예악정치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도량도 작고, 사치했고, 자기 분수를 몰랐던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도덕주의자인 맹자와 주자는 관중을 의리를 지킬 줄 모르는 장사치 아니면 법가사상의 비조쯤으로 평가절하하곤 했습니다.
14편 ‘헌문’ 3개 장(9, 16, 17)에 걸쳐있는 관중에 대한 공자의 평가는 전혀 다릅니다. 비명횡사한 원래의 주군을 따라 죽는 필부의 길을 버리고 잠시의 치욕을 견디며 제환공의 신하가 되는 길을 택함으로써 여러 제후를 규합해 오랑캐를 물리치고 중화문명을 지켜냈다고 상찬합니다. 그 과정에서 무력에 의지하지 않고 문덕(文德)을 실천함으로써 공자 자신은 감히 바랄 수도 없다고 했던 어짊을 선취했다고 칭송합니다.
팔일 편과 헌문 편의 편차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어짊이 예보다 상위의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어짊은 수제의 덕과 치평의 도를 접목함으로써 발현되는 것입니다. 예는 그러한 어진 정치의 선례를 내면화하기 위한 문명질서를 말합니다. 어짊은 예에 선행하며 더 본질적인 가치입니다. 예는 과거의 어진 정치를 모방하고 재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제도적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중은 예를 잘 몰랐음에도 어진 정치를 구현해 냈습니다. 어진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형식과 제도에 대한 이해는 투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짊의 정신과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춘추시대 최고의 성공신화를 쓴 관중에 대한 공자의 진정한 평가입니다.
공자는 이 장에서 관중에 대해 3가지를 언급합니다. 그릇이 작다(器小), 검소하지 못했다, 예를 몰랐다(不知禮)입니다. 그릇은 곧 마음의 그릇을 말합니다. 그 크기가 작았다 함은 다른 사람들을 마음에 품어내는 도량(度量)이 작았다는 소리입니다. 검소하지 못했다는 것은 곧 사치했다는 겁니다.
원문의 삼귀(三歸)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지만 돌아갈 집이 3채나 됐다로 풀었습니다. 또 보통 대부의 가신은 여러 가지 직책을 동시 수행했는데 한 가지 직책만 수행하도록 했으니 가신의 숫자가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예를 몰랐던 사례로 제나라 재상이었던 관중이 오직 제후(邦君)에게만 허용되는 일을 벌인 2가지가 지적됩니다. 색문(塞門)은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설치하는 일종의 가림벽을 말합니다. 주례에 따르면 왕은 대문 밖에 설치할 수 있고, 제후는 대문 안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대부는 발을 드리우는 걸로 대신하고, 사(士)는 장막을 치는 걸로 대신합니다.
또 반점(反坫)은 제후가 다른 제후와 우호를 다질 때 주고받은 술잔을 엎어서 보관하는 잔대를 말합니다. 양 기둥 사이에 흙을 쌓고 색을 칠해 특별 대접을 해주는 잔대입니다. 제환공을 섬기는 재상이었던 관중이 색문과 반점을 설치한 것은 스스로를 제후의 반열에 올려놓는 행위이니 예에 어긋난 다는 지적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치와 비례(非禮)가 도량이 넓지 못한 것과 연결된다는 공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도량이 넓은 사람은 타인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니 곧 덕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덕 있는 사람은 왜 검소하고 예에 대해 잘 아는 걸까요?
사치하지 않는 것은 물질적 풍요를 과시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대다수 사람에게 소외감을 심어주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킴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를 잘 알고 또 그것을 잘 지키는 이유는 벼슬이 높을수록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어야 함을 알기에 더욱 금도(襟度)를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종합했을 때 관중은 어짊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수제의 덕은 좀 부족해 사치하고 예를 잘 지키지 않았지만 그를 충분히 만회할 정도로 치평의 도에 밝았다는 것입니다. 어짊이 도와 덕의 적절한 조합으로 구현된다는 것은 이렇게 관중의 사례에서 다시 증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