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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Feb 05. 2021

도와 덕의 차이

19편 자장(子張) 제7장

  자하가 말했다. “온갖 장인이 사(肆)에서 머물며 공예품을 완성하듯 군자는 배움을 통해 그 깨달음에 이르러야 한다.”  

    

  子夏曰: “百工居肆以成其事, 君子學以致其道            

  자하왈    백공거사이성기사    군자학이치기도




   우리는 인격을 도야한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여기서 도야(陶冶)의 정확한 뜻을 아시나요? 도(陶)는 도자를 빚는 걸 말하고, 야(冶)는 쇠를 주조하는 걸 뜻합니다.  따라서 인격을 도야한다는 말은 장인이 도자기를 빚고, 쇠를 주조할 때처럼 지극정성을 다한다는 뜻을 지니게 됏습니다. 따라서 인격을 도야한다는 말은 도자기를 빚고 쇠를 주조할 때 장인이 정성을 다하듯이 인격을 빚어내라는 비유적 의미의 표현입니다.  

  

  그 어원은 어디서 유래했을가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자하의 이 발언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사(肆)라는 한자어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공방과 그것을 판매하는 가게를 겸한 공간을 말합니다. 책방을 뜻하는 책사(冊肆)나 화가들의 그림을 파는 도화사(圖畵肆)라는 옛 말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하는 깨달음을 위해 학문에 정진하는 것을 장인이 최고의 공예품을 얻기 위해서 사에서 먹고 자며 갖은 정성을 다 기울이는 것처럼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하가 백공이 도자를 굽고 쇠를 단련하듯 학문에 정진해서 얻는 것은 덕(德)이 아니라 도(道)라는 점입니다. 오늘날 도덕이란 말로 뭉뚱그려지고 있지만 도와 덕은 분명히 다릅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 차이를 설명하실 수 있으신가요? 

    

  유가의 언어로 말하면 덕은 수신제가요, 도는 치국평천하에 해당합니다. 현대적 언어로 말하면 전자는 개인적 도덕이요, 후자는 정치적 리더십입니다. '논어'를 곱씹어 읽다보니 그 둘의 차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덕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고 그래서 종종 그릇에 비견됩니다. 덕을 쌓는 것은 타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이와 달리 도는 사물과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를 뜻합니다. 그래서 종종 길에 비유됩니다.


   유가의 언어로 말하면 덕은 수신제가요, 도는 치국평천하에 해당합니다. 현대적 언로 말하면 전자는 개인적 도덕이요, 후자는 정치적 리더십입니다. '논어'를 곱씹어 읽다보니 그 둘의 차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덕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고 그래서 종종 그릇에 비견됩니다. 덕을 쌓는 것은 타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이와 달리 도는 사물과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를 뜻합니다. 그래서 종종 길에 비유됩니다.


  덕이 나(我)의 내면적 확장이라면 도는 타자(物)에 대한 이해의 심화입니다. 이를 천지인과 연관해 설명하면 그 차별성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덕은 주관적 아(我)에서 출발해 인(人)을 거쳐 사회공동체라는 지(地)로 확장됐다가 시대정신이라는 천(天)과 공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도는 객관적 세계원리인 천(天)에서 연원해 객관과 주관의 상관물인 지(地)를 거쳐 주관적 인(人)으로서 아(我)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20세기 이후 우리는 압니다. 그 둘이 전혀 다른 범주의 문제이기 때문에 일치할 수 없음을. 아마도 이를 최초로 설파한 사람은 15세기 '군주론'의 저자인 이탈리아 정치학자 마키아벨리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를 정치한 이론으로 규명한 사람은 1932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발표한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입니다. 마키아벨리와 니버 이전까지 동서고금의 사상가들은 그 둘을 등질한 것으로 파악하거나 설명합니다. 그 전통이 워낙 강고해 오늘날에도 그 차이를 모르고 그 둘을 등치화하는 이가 태반인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데 도와 덕을 하나로 엮어내는 문제에 대해 가장 고심한 사람은 공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 역시 그 둘을 구별할 줄 모릅니다. 이는 자여(증자)와 맹자, 주자를 거쳐 이황과 이이처럼  덕 중심으로 둘을 통합적으로 이해한 수제파의 전통이 강고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대비해 자하-자유-자장 계열을 수제파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때 고증학이 가져온 변화입니다.


  명말 양명학을 창시한 왕양명(왕수인)은 이를 내성(內聖)과 외왕(外王)으로 구별했습니다. 내성은 내면의 덕을 쌓아 성인의 반열에 오르자는 뜻이고 외왕은 그러한 내적 깨달음을 국가통치에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수제=내성'이라면 '치평=외왕'에 해당합니다. 전자를 강조한 인물이 맹자라면 상대적으로 후자의 중요성을 부각한 인물이 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수제=내성이 곧 주관적 덕이고 치평=외왕이 객관적 도입니다. 내면의 도덕성을 중시한 주희 등 송대 성리학자는 맹자 계열을 고갱이로 보고 순자 계열을 쭉정이로 평가했습니다. 공자의 위대함은 여기서 다시금 확인됩니다. 그 둘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을 필생의 화두로 삼고 고심한 사람으로서 공자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공자는 그 화두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냈을가요?


  먼저 도와 덕을 천의무봉에 가깝게 하나로 연결해낸 전범이 될 인물을 역사 속에서 찾아냈습니다. 요순우 임금과 은탕왕 주문왕 주무왕 같은 성인(聖人)입니다. 그리고 나서 지금 여기서 그 둘의 접목을 꿈꾸는 이들을 군자라는 이름으로 소환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와 덕을 하나로 엮어내는 군자지몽(君者之夢)은 어떻게 해야 이뤄낼 수 있을가요? 공자가 첫 번째 키워드로 생각해낸 개념이 바로 ‘어짊(仁)’입니다. 인격적으로 어진 인물이 집단적으로도 어진 정치를 끌어낸다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면 즉자적 이해가 이뤄지긴 하지만 그렇다면 어질다는 것의 본질이 뭐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가 따로 없습니다.


  사실 당대의 현실에 비춰봐도 도덕군주를 표방했다가 몰락한 송양공의 사례처럼 어진 사람이 꼭 좋은 정치를 펼치는 것만은 아닙니다. 반대로 관중이나 상앙처럼 반드시 어질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 좋은 정치를 구현해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다시 들고 나온 보다 구체적 개념이 바로 예(禮)입니다.


  예는 요즘의 개념으로 설명하면 사물의 이치를 뜻하는 도 중에서도 ‘공동체의 운영 원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정치를 함에 있어 군왕과 신료, 백성 간에 합의된 원칙과 질서로서 오랜 전통과 결부돼 있는 겁니다. 은나라와 주나라 때를 거쳐 춘추시대까지 그것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조상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제례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었습니다. 중국에선 고래로 그런 의례를 담당한 사람들을 유(儒)라고 불렀습니다.  

    

  공자는 어릴 때부터 그에 정통했습니다. 게다가 그가 태어난 노나라는 주공(周公) 단의 자손에게 봉작된 나라였습니다. 주공은 주나라의 국가운영의 원리와 질서의 창안자였습니다. 비록 후대에 편집되긴 했지만 그것을 기록한 책이 바로 ‘예기(禮記)’입니다. 지금 읽어보면 군왕과 신하 간에 지켜야할 에티켓 북에 가깝지만 공자는 유가 관장하는 그 예의범절의 개념을 확장해 ‘국가운영의 질서와 조화를 끌어내는 것’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인과 예는 어떻게 다를까요? 덕과 도의 관계를 닮았습니다. 인이 예의 내면 원리라면 예는 인의 외적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를 내면화한 것이 인이요, 인을 외면화한 것이 예인 것입니다. 이것만 놓고보면 '인=내성'과 '예=외왕'의 구도가 됩니다.


  사람들의 혼란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용어만 보고 '덕=수제=내성=인'과 '도=치평=외왕=예'로 단순 등치시켜버리는 우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인은 단순히 주관적 덕으로만 귀결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객관적 도와도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인은 도와 덕을 아우릅니다. 따라서 인과 예를 내성과 외왕으로 구별하는 것은 덕의 차원이 아니라 도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성과 외왕이란 상대적 개념만 보고 혼돈을 일으켜선 안됩니다.


  도와 덕의 이런 차이를 이해하고 자하의 발언으로 돌아가 볼까요? 도야가 필요하다고 자하가 말한 대상은 주관적 덕이 아니라 객관적 도입니다. 수제가 필요한 인격함양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평이 필요한 정치원리에 대한 이해를 겨냥한 것입니다. 도자를 굽고, 쇠를 주조하는 백공의 일은 객관적 상관물을 다루는 것입니다. 도를 터득하는 치도(致道)의 대상 역시 주관적 인격도야가 아니라 객관적 정치원리에 대한 터득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공부의 대상 역시 수제가 아니라 치평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하의 학맥이 순자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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