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편 자장(子張) 제6장
자하가 말했다. “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하게 하며.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일에서 생각하면. 어짊은 그 가운데에 있다.”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자하왈 박문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
문학의 대가인 자하는 함축적인 글로써 후대 유학자들에게 많은 자극을 줬습니다. 이 대목도 그중 하나입니다. 송대의 주희와 여조겸은 이 구절에 자극을 받아 송대 초기 성리학자들의 저술의 앤솔로지를 뽑은 선집을 출간하며 그 제목을 ‘근사록(近思錄)’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선택이었습니다. 정작 근사록은 지극히 고원한 성리학의 형이상학(태극도설) 소개에 치중하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일상의 사유로 전환하기 때문입니다. 근사록이란 책 제목은 바로 그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그에 대한 방어 논리로 붙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하는 여기서 유가의 공부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4가지로 구성됩니다. 널리 배우라는 박학, 그 뜻을 독실하게 하라는 독지, 절실하게 질문하라는 절문, 가까운 일에서 생각하라는 근사입니다. 이 넷은 어떻게 다를까요?
박학은 공부하기를 좋아함(호학)에 있어 감히 최고라 자부했던 공자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특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각 분야의 고수를 만나면 묻고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공자처럼 공부하라는 소리입니다. 학력사회가 된 한국에서 언제부터인가 '공부의 신'이란 말이 유행하던데 그 원형으로 공자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물론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공부법과 맞지 않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인문학 공부를 할 때는 박학이 최고입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잡다한 내용이 서로 서로 연결되면서 지식이 삽시간에 확장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 떄문입니다.
20세기 최고 석학으로 불린 움베르트 에코의 공부법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개의 고원'에서 밝힌 리좀(rhyzome) 모델을 따르는 공부법입니다. 리좀은 고구마, 감자, 토마토 같은 땅속줄기식물을 말합니다. 뿌리-줄기-가지가 수직적으로 자라는 수목과 달리 리좀은 수평으로 자라며 특별한 중심을 형성하지 않으면서 동등하게 상호 연결됩니다. 공자의 공부 방식은 수직적 수목형이 아니라 수평적 리좀형이었습니다. 그의 공부는 사인(士人)이 되는데 필요한 육예(六藝) 과목에서 출발했습니다. 거기엔 활쏘기와 마차몰기, 숫자계산처럼 후대의 사대부들이 질색하는 과목이 절반을 차지합니다. 공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 주희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영역까지 공부에 공부를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독지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배워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리는 순간을 맞게 됩니다. 그때를 대비해 왜 공부를 하느냐는 초심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공자에게 그것은 군자의 길을 걷는 것. 즉 사물의 이치인 도를 터득하는 것과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덕을 확충하는 것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 현실에서 그것은 정치이며 군자는 좋은 정치를 일궈내는 것을 통해 그 목표에 근접해가는 것입니다. 공자에겐 그런 군자학이 지도이고 나침반이었던 겁니다.
한무제 때 유학자이자 공자의 11대손으로 알려진 공안국은 독지를 ‘후지(厚識)’로 새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널리 배운 것을 확실하게 기억해둬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공부법 자체에만 매몰된 해석입니다. 공자의 후손이 정작 공자가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를 몰라서 한 말입니다. 공자는 따로 선생이 없었기에 자신이 배운 바를 따로 검사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뒤에 나오는 절문과 근사를 통해 학습을 하다 보면 굳이 딸딸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집니다. 짧은 시간에 효과적 공부를 지향하는 요령 좋은 사람들이나 외워서 공부한다는 것을 공안국은 몰랐던 듯싶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궁금해하는 것이 절문입니다. 간절히 궁금하면 궁리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전전반측(輾轉反側)과 오매불망(寤寐不忘)이란 표현이 꼭 연인을 그리워할 때만 쓰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경지가 바로 절문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답을 찾게 되면 질문의 깊이도 달라집니다. 다른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질문을 던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품은 질문에 답을 만나게 되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절로 뇌리에 속속 박히는 법입니다.
마지막이 해석이 가장 어려운 근사입니다. 가까이 생각하다로 해석될 수 있고 생각을 가까이한다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앞의 박학, 독지, 절문이 모두 ‘부사어+동사’의 구조이기에 전자가 자연스럽습니다. 주희 역사를 전자를 택해서 고매하고 원대한 사상을 자기 주변의 문제에 먼저 투영해 생각해보라고 새겼습니다. 서양철학의 어법을 빌리면 아무리 심오한 형이상학적 문제라도 구체적 현실 속에서 그 단초를 찾으라는 뜻입니다.
이는 도와 덕의 접점으로서 정치를 떠올리면 더욱 명쾌해집니다. 공자가 정치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을 이론적으로만 받아들이면 교과서처럼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금 여기의 현실정치에 접목해서 풀어보면 그 진가가 생생히 살아납니다. 신문 칼럼에서 논어 구절이 그토록 많이 인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의 역사까지 접목해 살을 붙이면 그 메시지는 더욱 폐부를 파고드는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렇다고 근사를 이렇게 좁게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을 가까이 하라’는 뜻으로 새겨도 나쁘지 않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를 믿고 인간이란 동물은 가만 놔둬도 생각이란 걸 한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은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두뇌활동입니다. 따라서 뭔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외부로부터 도전에 직면했을 때 그에 대한 응전으로서 생각의 카드를 꺼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단순한 루틴을 만들어두고 그걸 반복하려고 하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크지 않나요. 오락을 즐긴다고 해도 보통은 뇌를 수동적으로 쓰는 것을 좋아하지 스스로 적극 뇌를 쓰는 걸 즐기는 사람은 드뭅니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그런 소인과 달리 작은 일에도 두뇌를 가동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훈련받은 이들을 말합니다. '군자=근사자(近思者)'인 셈입니다.
‘생각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일상적 문제에 대해서도 늘 생각에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늘 접하고 늘 하던 일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그래서 그 일상이 합목적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근사는 절문을 포함하게 되며 절문과 마찬가지로 굳이 그렇게 해서 배운 것을 암기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일상에 대한 이런 문제의식을 전통에 적용될 경우 그것을 지켜야 한다면 “왜 지켜야 하는지?”를 묻고 그것을 바꿔야 한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묻는 것이 됩니다. 전통에 이성의 빛을 비추는 행위로 후대의 유학자들이 간과했지만 공자의 사상이 당대의 혁명인 또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하는 이 짧은 글에서 박학, 독지, 절문, 근사를 실천해야 하는 나침반과 지도를 제시하는 것까지 잊지 않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야 할 이유가 어질어지기 위해서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어짊(仁)은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윤리적 덕목의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윤리와 인간 공동체의 삶의 원리로서 정치를 하나로 아우르는 내면적 가치의 총화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호모 에티쿠스(homo ethicus)’와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의 접점이 곧 어짊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