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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Oct 17. 2023

분수를 모르면 재앙이 닥치리니

3편 팔일(八佾) 제6장

  계씨가 태산에서 산신제를 지내려 했다. 공자가 염유에게 말했다. "네가 막을 수 없겠느냐?" 염유가 "막을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공자가 말했다 "오호라. 슬프도다. 어찌 태산이 임방(林放)보다 못하다고 여긴단 말인가?"

      

  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계씨려어태산    자위염유왈    여불능구여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不如林放乎?"

  대왈    불능   자왈    오호  증위태산불여임방호  


        

  여(旅)는 깃발을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을 형상화한 한자입니다. 고대에 산천에 제사를 올릴 때 씨족깃발을 앞세우고 무리 지어 이동한 뒤 제사를 지낸 것에 산천에 제사를 올리는 것을 旅라 했습니다. 

     

  태산은 중원에서 신령스럽게 여기는 오악(동악 태산, 남악 형산, 서악 화산, 북악 항산, 중악 숭산)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천하제일의 명산입니다. 그래서 왕(천자)이 직접 산신제를 올리는 산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제후는 자신의 봉지 안의 산천에 제사를 들릴 수 있었으니 태산이 위치한 노나라의 제후 또한 산신제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원문의 계씨는 공자의 제자인 염유가 모시는 인물이니 계강자를 말합니다. 대부인 계강자가 왕이나 제후만 가능한 태산에서 산신제를 올리는 것은 예에 어긋납니다. 노나라 제후인 노애공의 특권을 침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자는 제자인 염유에게 주군인 계강자를 설득해 만류할 수 있으면 만류하라고 합니다. 원문의 救는 본디 신령한 힘을 지닌 짐승의 가죽을 몽둥이로 때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그로부터 저주나 재앙을 물리친다는 의미의 ‘막다’와 ‘구원하다’는 뜻이 파생됐습니다. 여기서는 잘못된 재사를 올려 산신의 노여움을 사는 것을 막음으로써 계강자를 구제하라는 뜻을 함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세를 위해 예스맨으로 살 결심을 한 염유는 그럴 뜻이 없습니다. 그러다 계강자의 눈밖에 날 수 있을까 저어 되서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역량밖의 일이라고 발뺌합니다. 공자의 도를 좋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역량이 부족해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고 변명했던 염유의 모습(6편 ‘옹야’ 제12장) 그대로입니다. 

    

  공자는 그런 염유에 대해 “역량이 부족하다 함은 어떻게든 해보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의 너는 아예 못하겠다고 선을 긋는구나”라고 매섭게 비판했습니다. 이 장에선 길게 탄식하며 임방(林放)이란 인물을 등장시켜 “태산이 임방보다 못하다고 여긴단 말인가?”라고 말합니다. 

    

  그 숨은 듯을 이해하려면 임방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먼저 말아야 합니다. 임방은 ‘논어’에 두 번 등장하는데 모두 팔일 편(제4장과 제6장)입니다. 제4장에서는 예의 본질에 대해 질문에 공자의 칭찬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문묘에 공문 72현 중 한 명으로 배향됐지만 정작 ‘중니제자열전’과 ‘공자가어’에는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아 공자 제자인지도 불확실합니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의 파편적 기록과 초상화가 접해집니다. 자는 자구(子丘)이며 노나라 출신으로 은나라 말기 충신인 비간의 27세손이라는 기록도 보입니다. 노나라에서 대부를 지냈다는 기록과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태산에 은거하며 예학에 전념했다는 기록이 엇갈립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임방은 염유와 같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가 상찬할 만큼 예에 대한 식견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으면서 태산에 오래 은거한 인물입니다. 그런 임방보다 태산이 어찌 못하겠느냐는 말은 왕과 제후가 바치는 무수한 산신제를 받은 태산의 산신령이 그 태산에서 오래 살았다 해도 인간에 불과한 임방보다는 그 제사에 더 정통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제사를 올리는 것을 태산의 산신령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오히려 노여움을 살 것이란 엄중한 경고가 숨어 있는 발언인 것입니다.  

    

  임방이 공문의 제자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만일 공문의 제자가 맞다면 이는 또한 같은 노나라 출신으로 높은 벼슬에 올랐음에도 예에 어긋나는 짓을 외면하는 염유가 평생 벼슬길을 오리지 않은 임방에 미치지 못한다는 질책의 뜻도 숨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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