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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Feb 08. 2021

자하가 공자를 능가 못한 이유

19편 자장(子張) 제5장

  자하가 말했다. “날마다 모르던 것을 알고, 달마다 능숙하던 것을 잊지 않으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만하다.”      

  

   子夏曰: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자하왈   일지기소무   월무망기소능   가위호학야이의



  공자는 73세까지 살았습니다. 춘추시대 사람으로선 엄청 장수한 것입니다. 자여(증자)가 70세, 자공과 자로가 60대, 자장이 50대, 안회가 40대에 숨졌음을 감안하며 더욱 그러합니다. 공자의 제자 중 스승보다 오랜 수명을 누린 대표적 인물이 ‘남방공자’ 자유와 ‘서하공자’ 자하였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아니지만 자유는 104세, 자하는 88세까지 산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 자하의 말이기에 의미심장한 구절입니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매달 능숙한 것을 복기한다 했으니 87세까지 산 그의 공력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불행히도 그가 노년에 외아들을 먼저 보내고 너무 슬퍼한 나머지 시력을 잃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다면 스승을 능가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겠지요?   


  자하의 이 발언은 2편 위정(爲政) 제11장에서 공자가 말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비견됩니다. 공자는 먼저 옛 것을 익히고 그 다음 새 것을 배우라고 가르쳤고 자하는 그 순서를 뒤집어 말했을 뿐 본질은 같다는 겁니다. ‘지기소망=지신’이요, ‘무망기소능=온고’라는 다산 정약용의 풀이가 대표적입니다.      

 

  제가 보기엔 온고지신과 일지월무망은 다릅니다. 공자가 말한 온고지신은 옛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끌어낸다는 뜻입니다. 클리셰가 되어버린 고전에서 참신한 의미를 새롭게 끌어낸다는 뜻입니다. 반면 자하가 일지월무망은 매일같이 새로운 것을 배우되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과거에 습득한 것을 잊지 않았는지 한 번씩 갈무리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뜻입니다. 전자에 방점이 찍혔으되 복습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의미로 봐야합니다.     

 

   제6장에서 소개된 박학, 독지, 절문, 근사에 입각해 배움을 얻는다면 따로 암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새로운 공부가 쌓이다보면 오래 전에 터득한 것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한달에 한 번꼴로 오래전에 익힌 것을 까먹지 않고 있는지 점검해보라는 뜻입니다.      

    

  명말청초의 고증학자 고염무는 30여년에 걸쳐 자신의 독서편력을 일기로 남겼습니다. 나중에 이를 편집해 책으로 발간했는데 그 제목이 ‘일지록(日知錄)’입니다. 자하의 이 경구를 토대로 매일 새로운 것을 읽고 배웠다는 의미에서 붙인 겁니다. 그만큼 자하가 남긴 글은 송대 성리학자 주희 뿐 아니라 청대 고증학자 고염무까지 다양한 층위에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하의 일지월무망은 공자의 온고지신 보단 내공의 깊이가 부족합니다. 자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을 앞세우는 반면 공자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리는 심층 학습의 더 짜릿한 희열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하의 학문이 탁월하긴 하지만 깨달음의 깊이를 놓고 보면 공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 산다고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아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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