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우민일기

모든 걸 집어삼키는 취미판단

-2025년 5월 3일(흐리다 아련한 봄비 내림)

by 펭소아

아직 우민의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할 뿐 '유레카'를 외칠 수 없게 만드는 생각이 있다. 사람들이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 어떤 사유가 작용하느냐다. 칸트와 한나 아렌트가 이에 대한 저술을 준비하다가 모두 완성하지 못하고 숨졌다.


그 미완의 생각을 더듬어보면 진위를 가르는 이성(순수이성), 선악을 가르는 윤리(실천이성), 미추(美醜)와 호오(好惡)를 가르는 취미판단(판단력)이 동시에 작용하지만 특히 취미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취미판단의 역할은 21세기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더욱 두드러진다.


호오의 감정에 기초한 정치판단은 정치인에 대한 팬덤 현상과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감 표출(헤이트 스피치) 그리고 외국인혐오에 기초한 극우정당의 출현에서 뚜렷이 감지된다. 특히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 기초해 타인을 재단하고 분류하려는 성향이 더욱 뚜렷하다.


이성과 윤리를 배격하고 오로지 호오의 감정에 의지하려는 태도를 우민은 노인들에게서 많이 발견하곤 했다. "다 됐고, 이제 나는 싫은 꼴은 안 보고 좋은 것만 보고 하고 살거야"라는 태도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는 싫다며 책을 멀리 하고 자기들 속시원한 소리만 해주는 유튜브만 보고 사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헌데 인류문명이 어떤 한계에 봉착했는지 요즘은 노인 청년 유아 가릴 것 없이 저런 태도를 견지하는 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성과 윤리는 저 멀리 치워두고 오로지 취미판단에 의거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난 쟤가 웬지 싫어"와 "난 쟤가 너무 좋더라고"라는 판단을 정치 영역까지 끌고가는 경우들이다.


문제는 그런 분들 붙잡고 아무리 얘기해봐야 '쇠귀에 경 읽기'라는 것이다. 자신의 취미판단에 의거해 결정을 내린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쇠심줄 뽑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이 우민의 판단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응급처방전의 하나로 "되도록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만 표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한 혐오발언은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헌데 장미대선을 앞두고 저마다의 취미판단에 의거해 선택한 후보에 대한 일방적 지지발언을 접하는 것 또한 곤욕임을 깨달은 우민은 망연자실해졌다.


아, 칸트가 열어젖힌 판단력비판의 세계야말로 '판도라의 상자'가 아닐까하는 공포가 우민을 엄습하는 요즘이다. 미추와 호오의 감정이야말로 이성과 윤리의 실종을 낳게 만드는 '버뮤다 삼각지'가 아닐까?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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