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3일(젠장, 그러고보니 13일의 금요일이었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 사람은 헤겔이었다. 그걸 받아서 "한 번은 비극적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적으로"라는 사족을 붙인 게 마르크스였다.
'루이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책에서 마르크스가 그 사례로 거명한 것이 나폴레옹과 그의 조카로 훗날 나폴레옹 3세가 되는 루이 보나파르트였다. 그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비극적 영웅의 풍모를 갖춘 반면 나폴레옹 3세는 소극의 주인공인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우민은 이를 현재의 미국에 적용해본다. 역사의 반복은 트럼프 1기와 트럼프 2기라 할 수 있다. 무엇이 비극적이고, 무엇이 희극적인가? 우민의 눈에는 1기가 소극이라면 2기는 재앙으로 비친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의 표현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경찰 역을 맡은 미국이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위험이 높은 양대 지역으로 특별 관리한 것이 중동과 한반도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함으로써 3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악몽에 한 걸음 성큼 다가서게 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트럼프라는 미치광이 광대가 두 번이나 미국 대통령에 뽑히는 불상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우민의 판단이다. 1기 때 트럼프는 어리바리해 미국의 안보전문가들의 통제를 받았지만 2기 때 트럼프는 제법 노회해져서 제멋대로 국가 안보를 주무를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팍스 아메리카에 엄청난 균열을 가져왔다.
특히 자신의 자만심 충족이라는 사익을 위해 미국의 국익을 갖고 주사위 놀이를 벌이는 것을 보면서 다른 나라의 미치광이들도 "어? 저래도 되는 거였어?"라며 따라서 미친 짓을 벌이게 된 결과 아닐까? 한반도에도 그런 미치광이 광대가 하나 더 있기에 한국 역시 풍전등화 앞에 높였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 지점에서 공화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776년 미국 건국의 양대 사상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였다. 자유주의의 고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의 결정적 차이는 전자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공선사후의 정신에 입각해 있다면 후자는 자유로운 사익추구가 국가번영의 열쇠라고 믿는 점이다.
공화주의는 '공공의 것'을 뜻하는 라틴어 'res publica'에서 출발했듯이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점을 결합한 공화국을 공공의 것으로 지켜낼 때 그 구성원이 자의적 통치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신념의 산물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시장 자본주의의 장점을 최대한 존중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공적 영역에서 사익추구가 가져올 폐해를 억제하기 위해 공화주의 사상과 시스템을 함께 도입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자유주의가 시장만능주의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로 변질되면서 공적 영역에서조차 사익 추구를 방기해버리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 그 결과, 오로지 자기 잘 난 맛에 살아가는 사익추구의 화신을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그것도 두 차례나 뽑는 자해극을 벌이게 된 것이다. 자신의 나르시시즘 충족을 위해 국가 이익마저 패대기치는 미치광이 광대가 공화주의를 계승한다는 정당을 대표한다는 것이야말로 미국 공화주의의 죽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우민은 생각한다.
그 결과, 미국 몰락의 역사는 두 차례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한 번은 소극으로, 다른 한번은 재앙으로.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