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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Feb 26. 2021

봉황을 기다리느니 수탉이 되리라!

18편 미자(微子) 제5장

  초나라의 미치광이 접여가 노래를 부르며 공자 앞을 지나다가 말했다. “봉이여, 봉이여, 어찌 덕이 그리 쇠하였는가? 지난 일은 말해도 소용없으나 앞일은 그래도 따를 수 있으리라.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지금 정치하는 사람은 위태로울 뿐이리라!”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그와 말을 나누고자 하였지만, 접여가 재빨리 사라져 버려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楚狂接輿歌而過孔子 曰: “鳳兮鳳兮何德之衰往者不可諫來者猶可追已而已而今之從政者殆而!”

  초광접여가이과공자  왈    봉혜봉혜     하덕지쇠  왕자불가간  내자유가추  이이  이이   금지종정자태이
  孔子下欲與之言趨而辟之不得與之言.

  공자하   욕여지언  추이피지  부득여지언         



     접여라는 인물 역시 그 행태를 보고 이름이 붙여진 초나라 은자입니다. 그 이름 자체가 ‘수레에 접근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양광(佯狂)이라 하여 일부러 미친 척하고 다닌 육통(陸通)이란 인물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누가 됐건 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공자를 봉황이라고 추겨 세우는 듯하면서 실제론 시세를 읽지 

못한다고 조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설의 새인 봉(암수 짝지어 부를 때는 봉황)은 성군이 출현하는 태평성대에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렇지 않을 땐 모습을 숨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자를 그런 봉황에 비견한다는 점에서 공자가 비범한 인물임을 인정하고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니 자신과 같은 은자들처럼 몸을 숨기고 정치할 생각을 접으라고 충고한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진실로 봉황이라면 나타나야 할 때와 숨어있을 때를 알아야 하거늘 어찌 그걸 분별 못하고 이리 설쳐대는가? 그대가 나타났다고 반겨할 성군 따위는 없으니 폭군의 사냥감이 되거나 구경거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은인자중 하시게나.”


  만일 공자가 접여와 말을 섞을 수 있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요? 아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봉황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저는 잘해야 수탉밖에 안 되는 존재입니다. 그것도 해 뜰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미명을 쫒고 새벽을 재촉하려는 마음에 홀로 울어재끼는 시간 개념 부족한 수탉 말입니다. 그런 제가 안쓰러우시면 선생님도 저를 따라 ‘꼬꼬댁’하고 소리 높여 좀 울어주실 순 없을 런지요.”  

   

  어쩌면 접여는 공자가 그렇게 말할 것을 알았기에 황급히 몸을 숨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공자보다 접여가 시세를 보는 눈이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공자를 기용할 제후는 아무도 없을 것임을 내다봤다고요. 그렇지만 이후의 중국 역사에서 과연 봉황이 출현할만한 성군이 있었던가요? 


    유가적 관점에서 폭군의 대명사였던 진시황? 군신 간의 의리를 저버리고 건국공신을 대거 숙청한 한고조(유방)나 명태조(주원장)?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 끝에 황제가 된 당태종(이세민)? 공자를 숭상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민족이었던 청의 강희제? 그도 아니면 아버지(당태종)와 아들(당고종)을 모두 남편으로 삼고 아들들을 몰아낸 끝에 중국 유일의 여황제가 돼 봉황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측천무후? 

     

  공자 사후 2500년간 중국 역사에서 명군(明君)으로 꼽히는 그 어떤 군주도 공자가 제시한 성군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은 없습니다. 만일 접여의 말대로라면 공자가 2500년간 계속 환생했다 하더라도 몸을 숨기고 살았어야 했을 겁니다. 공자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접여는 자신이 살던 시대와 여건밖에 보지 못했지만 공자의 시선은 그 너머의 시공간까지 열려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시대에선 좌절하고 실패할지라도 그가 꿈꾸던 군자몽은 계속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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