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를 지키는 만리장성
화장품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각질층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화장품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화장품이 불필요한 첫 번째이자 마지막 이유는 '화장품은 피부에 흡수되지 않는다'입니다. 이 주장은 과거에는 맞고 현대에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또는 어느 물질에는 해당되고 다른 물질에 대해서는 틀린 말입니다. 겨울에는 어느 정도 맞고 여름에는 어느 정도 틀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피부는 마을을 지키는 성곽과 유사합니다. 실제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마치 벽돌로 한층 한층 쌓아 올린 담벼락과 비슷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성곽이 강한 바람과 홍수 등 자연재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과 같이 피부는 신체기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피부가 없다면 자외선과 오염물질에 신체는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독성물질에 무방비로 공격받아 신체기관은 큰 해를 입을 것입니다. 이처럼 피부는 외부 물질의 침입을 막는 것이 주목적이기에 화장품의 흡수가 더디게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피부 위에 물과 기름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보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물은 물방울이 맺힌 상태로 장시간 피부 위에 동그랗게 올려져 있지만 기름은 피부로 퍼지고 금방 흡수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부는 친유성(기름과 친한 구조)기가 외곽으로 향해 있습니다. 때문에 물과 같은 친수성 물질의 흡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지만 기름과 같은 친유성 물질의 흡수는 빠르게 일어납니다.
피부는 환경 조건에 따라 물질을 흡수시키는 능력이 달라집니다. 온도가 높은 곳에 있는 고무가 차가운 곳에 놓은 고무보다 더 말랑말랑 하고 잘 구부려지듯 여름철 피부는 탄력이 높아 물질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겨울 피부보다 높습니다. 겨울철 딱딱한 피부는 물질의 흡수 자체를 거부합니다. 또한 다습한 곳에 놓인 피부가 건조한 환경에 있는 피부보다 화장품 흡수를 더 잘합니다. 때문에 겨울철 화장품을 바르기 전에는 피부를 충분히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표피의 구조와 기능
표피는 0.1~0.2mm 정도의 두께로 벽돌처럼 쌓여 있습니다. 표피 세포의 90% 이상은 케라티노사이트로 구성되어 있고 멜라닌을 형성하는 멜라노사이트와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랑게르한스 세포 등이 존재합니다. 표피는 형태적인 특징에 의해 기저층, 유극층, 과립층, 각층으로 나누어집니다.
기저층에서 생성된 표피 각화 세포는 유극층, 과립층으로 뻗어 나가고 각질층에 도착하면 생명을 잃고 죽은 세포로 존재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피부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새로운 각질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세포는 표피의 최외곽에 이를 때까지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기저층에서 과립층까지 움직이면서 세포는 활발하게 유전자를 만들어내며 각층의 보호와 보습에 필요한 단백질과 지질 등을 생합성합니다. 각질층의 세포는 죽은 세포로 유전자 등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효소 등이 작용하고 생리활성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각질층은 신체 보호 기능과 보습 기능을 담당하기 위한 중요한 조직입니다.
각질층은 편평한 각질세포와 그 사이를 메우는 세포간지질로 구성되며 벽돌과 같은 형태를 취합니다. 각질세포가 겹쳐져 10~15um의 각질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각질층에는 케라틴 섬유가 많이 존재합니다. 케라틴 섬유는 서로 뭉쳐 일정한 패턴을 가지며 각질층의 견고한 물성에 기여합니다. 각질층 세포 사이에는 세포간지질이 존재하며 세라마이드/콜레스테롤/유리지방산이 주성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표피 각화 세포에서 생합성됩니다. 생합성된 지질은 과립 세포의 라멜라 과립에 저장된 후 각층으로 이동할 때 세포 밖으로 배출되어 세포 사이를 충진 하게 됩니다. 이들이 라멜라 구조를 취하면서 피부 보호 기능을 수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