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할수록 그리고 자세할수록
너를 좋아해.
내게 있어 이 말은 너무도 소중해, 내밷는 순간 그 고귀한 의미가 퇴색될까 안타깝기까지 한 것이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이를 만나면, 마치 한 때 유행하던 볼록한 배 한가운데를 누를 때마다 여지없이 "달링, 알러뷰~ 달링, 알러뷰~"를 외치는 반짝이 곰인형과 오버랩되곤 했었다. 그 인형과 같이 느껴져서 결국 그의 형용된 진심은 내게서 오해를 사게 되기 마련이었고, 그 말을 들을수록 나는 그런 달콤한 말에 넘어가는 순진무구한 여자가 아니라는 오기를 부리게 되곤 했었다. 그처럼 내게 있어 '좋아한다'라는 말은 아끼고 아꼈다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진실되게 느껴지는 절정의 단 한 순간에 내벧어야만 하는 것이라 믿었었다.
그런 내게 있어 얼마 전 놀랄 일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그 친구와 진지하고 고찰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런 그의 우정 어린 고백은 적잖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있잖아, 나는 너와 얘기하면 이런 류의 대화를 하게 되서, 또 깊은 생각을 하게 돼서 참 좋다.
그래서 그런 네가 (친구로서) 참 좋다.
'지금 야가 머라카노..? 턱에 검은 수염이 덕지덕지 난 다 큰 머시마가 낯간지럽게..'라는 생각이 스쳤고, 스스로 내 양 팔뚝을 있는 힘껏 잡아야 오그라드는 자신을 겨우 부여잡을 수 있었다. 놀란 토끼 눈이 된 내 앞의 그 친구는 막상 담담한 표정이었고, 이 천상 서울 남자 사람 친구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헌데.. 이상하다. 이 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혼자인데도 전혀 쓸쓸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분명 친구의 담백한 고백에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이다. 오다 주웠다며 툭 던진 선물 같은 고백을 두 눈 깜빡이지 않고 순수히 내놓는 그에게서 진심을 느꼈고, 동시에 보통의 친구였던 우리 사이가 더 끈끈하게 엮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고백으로부터 나는 내가 얼마나 의미있는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믿음직하고 깊은 사람이란 사실을 이제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그가 던진 고백 한마디에 나는 금새 행복으로 가득 차 버렸다.
아, 이게 고백의 힘인가..?
좋아하던 이성의 사랑 고백을 심장이 터질듯한 폭발적인 설렘으로 비한다면, 오만방자함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는 친구의 담백한 고백은 심장에 따뜻한 피가 꽉 차는 그런 느낌으로 비할 수 있다. 내벧음으로써 좋아한다는 그 의미는 조금씩 퇴색되며 말을 거친 고백은 진실된 마음을 그대로 투영할 수 없다는 믿음을 지녔던 과거의 나는 친구의 진심 어린 고백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내가 직접 나의 진심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내 마음을 확신할 수 있을까! 내 주위에 모든 소중한 사람들은 나의 진심을 알만한 충분한 권리도 가치도 모두 지니고 있다. 고로 나는 이 진실된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고백은 할수록 닳는게 아니라 전할수록 게다가 자세할 수록 그 의미가 배가 되는 것이었다! 순수한 고백이 상대로 하여금 얼마나 큰 위안이 되며 동시에 관계에 있어 얼마나 큰 성장을 선사하는지는 고백을 해 보고 받아본 자만이 안다. 그래서,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오랜 십년지기 친구에게 고백의 문자를 남겼다.
그의 두 귀를 어설프게 막고선 나의 마음을 표현해 보았다.
아직은 고백 연습이 더 필요한 부끄럼 타는 스무 몇 된 여자애지만, 나는 곧 모두에게 심장이 꽉 차는 듯한 사랑을 전파하는 고백의 화신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왜, 어떻게, 어떠한 점이 좋은지 사소한 부분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해 줄 것이다. 그 고백으로부터 나는 마음을 전해 깊은 사이를 가지게 되어서, 그리고 상대는 자신이 얼마나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어서 우리 모두는 곧장 행복해질 것이다.
나는 그런 고백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