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만큼 이별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크리스마스이브의 스케이트장과 만화방, 도쿄타워, 춘천 닭갈비, 영화 마션, 첫 스키장, 푸른 안개꽃, 여의도의 분홍 진달래, 스트라이프 커플티, 하늘공원의 줄타기, 안개 낀 해운대, 남포동의 갑오징어회, 사격, 섬 자전거, 딸기맛 호로요이, 멜빵바지, 만석 닭강정, 차가운 계곡물에 백숙, 자몽에 이슬, 불꽃놀이. 이제 모두 안녕.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참 달콤하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여행을 다닌다는 것, 그렇게 누군가와 함께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달콤하다. 그건 힘든 일이 있을 때 마음 놓고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그도 나도 무척이나 외로웠던 순간에 마주했기에 몸도 마음도 누일 수 있는 함께라는 그 포근함에 빠져 정말이지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열렬한 열정의 시기가 지나 서로에게 익숙한 순간들이 도래하는 그 시간이 흐름에 이끌려 나는 더 깊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퇴근한 내게 고생했다며 머리칼을 넘겨주는 그의 섬세한 손길을 사랑했고, 내 못난 발에 얹힌 샌들의 끈을 묶어주는 그의 구부린 다정한 등을 사랑했고, 내가 만든 그 불어 터져 맛없는 짜장라면을 누구보다 맛있게 먹었다며 설거지를 해주는 그의 드넓은 어깨를 사랑했다.
여름의 끝자락, 어딜 가더라도 쾌청한 날씨 덕에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행복감이 저절로 무르익어가는 9월이 왔다. 비로소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마지막 계절이 온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들숨과 날숨이 오가는 것처럼 단조롭고도 평화로웠다. 너의 생일을 앞두고, 나는 너와의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며 편지를 쓰고 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골랐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채워나갈 때마다 나는 이 앨범을 함께 보며 행복을 공유할 너와 나, 두 사람을 상상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던 그 어느 날, 그는 내 곁이 아닌 다른 여자 곁에 있었다.
그것도 까마득히 모른 채 나는 그의 손길을 여전히 갈구했고, 나를 안아주는 그의 폭신한 가슴에 기댔다. 그는 내게 우린 어디서 함께 살면 좋겠냐는 의미심장하지만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다. 오래전부터 나는 회피하고 싶었던 문제지만, 맑은 하늘 탓이었을까 아니면 티셔츠 아래로 살짝 등에 땀이 맺히는 날씨지만 내 손 꼭 붙잡고 걷는 너의 슬리퍼 신은 발길이 유독 눈에 들어온 탓이었을까. 나는 그제야 그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OO 동네는 어때?
거긴 우리 회사에서 너무 멀고~
OO는?
음, OO 동네는 오빠가 별로겠지?
여전히 그의 손길에 찌릿할 수 있음에 새삼스러워하며 그 잇따른 미래를 상상하는 행복감에 젖은 여느 여자와 같았다,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내가. 결혼이란 명제를 멀게만 무겁게만 느끼며 회피하던 내가 그렇게나 마음의 문을 연 날이었다. 그리고 같은 날 그는 나를 부서트렸다. 하필 그 날 말이다.
내게 힘든 일이 생기면 곧장 그를 찾아가 위로를 구하곤 했다. 그런데 가장 힘들고 아프고 그가 필요한 이 순간에, 나는 의지할 곳을 잃었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길 바랐다. 모든 것이 꿈이거나, 그 흔히 말하는 몰래카메라 뭐 그 딴 거 말이다. 정말 그는 나를 아직도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 일은 한순간의 호기심일 수도 있고, 순간적인 유혹에 굴복했을 수도 있고, 내가 상상한 최악은 아니었므로 그가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나의 마음은 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거푸 거짓말을 거짓말로 덮어 나를 기만하려 했던 그의 태도가 그의 속임이 나를 더 가슴 아프게 했다.
무엇보다도 모든 배신감에 젖어서도 나는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좌절하게 한다. 이 괴로움 속에서도 그의 품을 그리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상처를 준 것은 그이고 배신을 당한 것은 나인데,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토록 힘이 들어 억울하기까지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그토록 원하는 한번 더라는 기회를 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그를 덜 사랑했다면 가능했겠지만, 나는 그를 이토록 사랑하는 자신이 무서웠다. 이번 일이 용서된다면 대체 나는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 또 그의 품에 다시 안기고 싶기도 하지만 다시 신뢰가 쌓이는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그의 품 속에서도 끊임없는 질투와 불안감에 옹졸해지는 자신에 질려버릴 것도 분명하다.
자고 일어나면 더 이상 그가 그립지도 아련하지도 가슴이 콕콕 쑤시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행복했던 만큼 꼭 그만큼 지금 되돌아 아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배가 된 고통은 지난 함께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보여주는 반증이다. 이처럼 사랑이 떠나가는 것은 혹은 사랑을 보내는 것은 한순간이 아니다. 헤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도 아니고, 상대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열심히 사랑하고 믿었던 시간들 만큼 꼭 그만큼 공들이고 시간을 들여야 그제야 사랑이 떠나갈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미련스러운 내게 그 완연한 이별이란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내가 그를 만났던 기적만큼이나 다른 기적이 나를 기다릴 테니까 분명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쾌청한 하늘이 나를 품어주는 계절이 돌아오면, 그때 즈음이면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을 거닐다 문득 잊었던 그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어느 미련도 아닌 지나간 추억의 한 컷으로 피식 웃을지도 모르겠다. 몇 번째의 가을이 되어야 가능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간을 들여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