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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Sep 06. 2017

수많은 마들렌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우리들 책장에는 '언젠간 꼭 정복하리형' 책들이 몇 권 있다. 주인의 손길이 아니라, 주인의 수많은 눈길로 이미 때가 타버린. 아마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또한 '언젠가 꼭 정복하리형' 책에 속할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 특유의 세밀한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지만 필자도 중간 부분에서 책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수학의 정석의 첫 챕터가 '집합'임을 누구나 잘 알듯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에 둔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이 책의 대서사시는 '마들렌' 하나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마들렌 향기'에 빠져들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향을 맡고 그 향과 관련된 특정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들을 '프루스트 효과'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향기'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통해 그와 관련된 일들을 떠올린다.

하나의 풍경, 물건, 단어, 소리.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장난스러워,

기억하려고 애를 쓰면, 기를 쓰고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  엉뚱한 무언가를 통해서 무심하게 하나의 추억을 턱 하니 내놓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을 우리는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득 프루스트의 '마들렌' 같은 무언가로 인해 기억이 소환되는 순간 우리는 제어할 수 없는 감정도 함께 느끼게 된다.


'아련함', '후회', '그리움', '분노', '기쁨', '슬픔'


내 오감을 자극하는 많은 '마들렌'은 내가 감사하고, 때로는 울적한 기억들로 차곡차곡 자라왔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리워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며

나를 사랑해주었던 누군가가 있으며

내가 참으로 사랑했던 누군가도 있었음을

알려준다.


고마운 나의 '마들렌'들


오늘 내 마들렌은 성시경 4집이다.


참으로 많이 좋아했던 가수.

모든 트랙의 제목을 외우고, 가수 본인도 콘서트장에서 기억해내지 못한 한 구석에 얌전히 있는 노래까지 외우는, 그런 팬이었다.


그의 노래는 내 중학교 시절,

시원한 벽에 붙어 잠에 들 채비를 하고, 천장에 붙은 야광별을 보며, 아버지가 주무시기 전 물을 꺼내드시는 소리를 듣던 그 밤을 떠오르게 한다.

교복은 옷걸이에서 흔들거리고, 내일은 선생님께 얼마나 칭찬받을 수 있을지만 골똘하면 되었던 그때.


나는 내 주변을 스윽 지나는 '마들렌'들이 감사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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