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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지영 Oct 31. 2020

인생은 벚나무처럼 살게

수고했어, 오늘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다시 마시안 해변을 찾았다.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제법 쌀쌀해진 가을이 지나가던 찰나였다. 한 계절 하고도 또 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처럼 길을 헤매지도 않았고 너무 익숙하게 도착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익숙해진다는 건 더는 처음과 같을 수 없다는 말로도 정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여름 마시안 해변에서 들렀던 카페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탁 트인 외부에 나오니, 마음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심의 답답함은 분명 없었기에 자연이 주는 안도감, 편안함 같은 것이 순서 없이 밀려왔다. 밀물이 들어오기 전 갯벌은 별 볼 일 없고 사소해 보이기까지 했다. 얼른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괜한 투정이 입 밖으로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썰물의 갯벌은 바다가 아닐까. 너무나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문득 조개처럼 꽉 다물고 더는 입을 열어주지 못하는 나의 옹졸한 내면을 보았다.





  어느덧 프리랜서 5개월 차. 계속되는 고민은 ‘오늘은 뭐할까?’ 혹은 ‘이제부터 뭐하지?’의 반복이다. 벌여놓은 일은 많고, 새로운 일은 계속되고 있다. 일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낫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미리 뛰어야만 한다는 점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게 한다. 재택근무라 집에서 일하는 건 당연한데,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등 뒤에서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여전히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틈을 보이지 마. 그 순간, 이미 지는 거야.”     


  단호한 눈빛의 한마디는 경쟁 사회에서 나 자신을 더욱 주눅 들게 했다. 사실 익숙해진다는 건 최초의 어색함, 최초의 두려움, 최초의 설렘, 최초의 어설픔이 사라지는 것이다. 인생 처음 살아보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베테랑이라고 해도 실수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실수하지 않는 것보다 실수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타인의 실수도 그렇고 나 자신의 실수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넉넉한 용납을 받지 못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한번 실수하면 그 실수는 없어야 하지만 모든 상황을 내 기준과 잣대로 생각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실수 없이 완벽한 사람보다 실수하는 사람에게 인간미를 느끼는 건 인지상정. 여러 가지 상황들로 대화조차 없어지는 요즘 진짜 지켜야 할 것은 ‘사람다움’이 아닐까 싶다. 나의 수많은 어설픔과 실수의 반복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어제의 나로 인해 오늘의 나 자신이 있었다.


 

사람답게 실수하고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이야말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라 생각한다. 나는 ‘감사 노트’를 쓰고 있다. 매일 노트에 감사했던 8가지를 쓰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고 ‘미니 일기’처럼 기록이 되기도 해서 좋다. 쓰다 보니 햇수로 3년 차가 되었다. 매일 쓰는 게 원칙인데, 시기를 놓쳐서 몰아 쓰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땐 어제와 오늘의 감사가 별 차이 없게 써질 때도 있다. 분명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왜냐면 어제와 오늘이 다른 날이기 때문이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이라고 해서 똑같은 건 아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그걸 알게 되었다.

 멍하게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물이 차오른 바다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노을이 반사된 창에는 해시태그로 ‘#힘내’라는 두 글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뜨거운 여름의 해변과 가을이 지나가는 해변의 느낌은 달랐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처럼 진한 단풍이 여기저기에서 남실거리는 푸른 파도와 함께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올해가 이제 8주밖에 남지 않았어.’     


 시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더는 넘길 시월의 날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어디에나 보이는 호박 귀신의 날(Halloween Day)로만 생각했다. 하다못해 디저트가 담긴 접시에까지 들어있었다. 왠지 허무했고 쓸쓸해졌다. 분명 달처럼 타오르는 노을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사람의 마음이란 참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이런데, 누구의 마음을 탓할까. 적어도 올해를 마무리하는 순간엔 원망이나 후회보단 따뜻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전에 없던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어려운 시기를 보낸 서로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었으면 한다. 그까짓 실수한 건 너그럽게 덮어 줄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꽁꽁 얼어붙은 작아진 어깨를 다시 펼 수 있도록 언 마음 녹이는 따뜻한 핫초코 한 잔 나눠줄 수 있는 사이라면 되지 않을까. 그거라면 족하지 않을까.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모두가 그랬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삶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잔인하게 깊이 파고들었다. 멍들었고 상처가 났고 피 흘렸다. 어쩔 수 없이 사람과 대면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졌다. 나 빼놓고 다들 잘 지내는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이 스스로가 파놓은 우울의 나락에 의심도 없이 빠져들게끔 했다. 판단 능력을 상실했고 감정이 이성을 제압하기에 이르렀다. 생각 없이 산다는  어려운 일이었고, 생각 없이 산다는  위대한 일이었다. 모든   잊고 깊은 숙면하기가 매일의 숙제였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버텨내기가 버거웠다.

  괜찮아질 거라는 헛된 기대를 품었지만, 계속되는 상황에 지쳐만 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돌아오던 길, 유난히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면서 인생은 벚나무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벚나무는 그저 한철 눈부신 꽃을 피우기 위해 잠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름에는 무성한 푸르름으로 가을에는 붉게 타오르는 단풍으로 온몸을 불사르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겨울이면 낙엽마저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겠지만, 또다시 다가올 봄을 위해 버텨낼 것이다.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벚나무가 내게 준 교훈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시대를 향해가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순환하고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는 새로 태어나고 있다. 눈 뜨는 게 끔찍하다는 사람도 있고, ‘죽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맞다. 살아있기에 느껴지는 고통인 것쯤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겠다.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삶은 우리와 가까이 있다. 어느 한순간 일지 모른다. 그래서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았으면 한다. 불안과 걱정을 곱씹으며 한탄하고 원망하는 것보다는 주어진 것을 온전히 살아내면 좋겠다. 반드시 지나가고 이 순간도 회상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앞으로도 더욱 괜찮아질 것이다. 오늘의 헛된 희망이 내일을 살게 한다. 내일을 꿈꿀  있다는 것이 감사할 일이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옥상달빛 by 수고했어, 오늘도> 中에서-     


  ‘무조건 잘 될 거야’라는 터무니없는 말보다 오늘의 내가 살아냈듯이 내일의 나도 살아내리란 말이 현실성 있게 느껴진다. 퇴근길에서조차 다음날 점심 메뉴를 매번 고민할 때마다 나는 내일의 나에게 주문을 맡겨버리곤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계속된다는 건 삶에 숨겨진 신비를 발견할 기회일지 모른다. 하루도 한순간도 알 수 없기에 기대할 수 있고, 기다려지기도 하는 게 내일이라면 꿈꾸듯이 오늘 하루는 곤히 잠들 수 있지 않을까. 모험하듯이 여행처럼 벚나무처럼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산다면 후회는 없지 않을까.



  올해 마지막 날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해주고 싶다. 어떤 방식으로든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이 세상에 잘못 태어난 사람은 없어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소중한 자신을 더욱 아껴주고 보살펴주는 시간으로 채워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삶은 계속될 거니까요. Life goes on! 잊지 말아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을. 당신의 ‘나다움’이 없다면 그런 ‘사람다움’이 죽은 사회라면 이 세상은 살 수 없는 곳이 될 거예요. 지금보다 더한 슬픔이 오더라도, 부디 우리 서로를 향한 온기(溫氣)를 거두지 말아요.      





에세이 <나비 일기(Psycho Diary)>에서 쓰인

나비는 그리스어로 ‘영혼’ 또는 ‘나비’를 뜻하는

‘Psycho(프시케)’입니다. 일상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기의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상처가 치유되고 자아가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읽어주시고, 구독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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