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지영 Oct 31. 2020

조금 특별해진다는 건

나 자신이 되는 것

일찌감치 취재를 나섰다. 코로나 시대에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었다. 단풍은 절정이었고, 하늘은 유난히 새파랬다. 벅찬 가슴만큼 잰걸음이 되었다.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마음이라 설렜다. 생각지도 못하게 인터뷰 일정이 잡혔고 순식간에 진행이 되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내 생각대로 진행되는 일은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터지면 놀란 마음에 새가슴이 됐지만, 기대감 자체가 없었기에 기쁨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험처럼 일상이 새롭게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하루하루가 놀람의 연속이었다. 적응될 만도 한데, 매번 아슬아슬했고 아찔하기도 했다. 뭔가 터질 때가 되었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면 덜컥 걱정부터 앞섰다. 그런데 그런 순간들이 쌓이자, 적응되는 날도 있었다. 마음의 근육에 살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오려내고 싶은 순간조차도 지나가면 밑거름이 되었다. 애초부터 필요한 순간과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라는 경계 자체가 없었는지 모른다. 인생 자체가 고행인 걸 안다면 살짝 지나가는 달콤한 순간에 목맬 이유는 없다. 어차피 다 그런 거다. 그냥 받아들이면 되었다.     




  만나게 된 3명의 인터뷰 대상자는 소상공인이었고, 지역의 거주민들이었다. 3명 중 2명이 지역 토박이였고, 지역이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창업을 시도했다. 적게는 2년 많게는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골몰하며 자리 잡은 것이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지금의 오늘은 철저한 시장 조사와 정확한 자기 분석으로 비롯된 것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사업장이 타 매장보다 차별성이 있는지 이 지역은 향후 어떤 모습으로 변모될 것인지에 따른 예측과 전망까지 술술 쏟아냈다. 물론 변수가 많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과 앞을 내다보는 직관력은 어떤 풍파가 와도 버텨낼 수 있는 뿌리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코로나의 광풍은 삶을 송두리째 뽑을 만큼 힘겨운 상황으로 몰아넣었지만, 그것 자체가 그들의 존재를 흔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앞을 내다보는 준비를 할 수 있는 기간이 되었고, 같은 상황에 놓인 그들이 힘을 합쳐 공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졌다. 저들만큼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여봐야만 후회할 수 있는 자격도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3명의 인터뷰 대상자는 업종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경력도 달랐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향성은 똑같았다. 하나같이 치열했고 고통의 시간을 겪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반짝였고, 그 눈빛에서 나는 희망을 읽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인생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누군가의 삶을 위로하는 척 글만 끄적이는 것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나도 먹어보는 게 순리였다. 단 한 줄을 쓰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님을 깨닫게 되면 삶을 대하는 자세는 겸손해지고 숙연해진다. 눈빛이 달라지고 치열해지는 것이다. 어제가 오늘인 것처럼 오늘이 내일인 것처럼 아무렇게나 살 수가 없어진다. 오늘이 또 온다는 건 예정돼있지 않다. 삶은 유한하고 언젠가는 끝이 있다. 그 언젠가는 아무도 모르고 그저 주어진 오늘을 사는 것이다.     


  ‘아, 그건 내일 할게요.’     


 사장이 직원에게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킨 일만 하고, 월급만 야금야금 챙겨가면 그렇게 속이 아플 수가 없단다. 내가 인터뷰한 소상공인 3인은 직원을 부릴 수 있을 정도의 매출 규모가 되지 않아서 본인들이 혼자서 버텨온 경우였다. 그들은 주변에 직원 월급도 챙겨주지 못하고 폐업한 많은 사업장을 언급하며 한숨을 지었다. 


  ‘일을 제대로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면 사장님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남의 일을 해주는 것과 나의 일을 하는 것에는 분명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지는 것이다. 관심의 정도와 애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서로가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생하기 위해서 함께하기 위해서 좋은 것을 이뤄내기 위해서 말이다.


  “별다른 게 없어요. 근데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죠.”     


 3명의 인터뷰 대상자로 듣게 된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었다. 한때 이곳이 ‘카페거리’로 유명해졌지만, 지역마다 너무 많아졌고 변별력이 없는 상황이다. 굳이 타지에서 여기를 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역주민만을 위한 장소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건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었고, 모두의 가장 고민인 부분이기도 했다. 불만이라기보다는 정확한 문제 인식이었다. 바꿔서 말하면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만 눈에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얼마만큼의 관심을 쏟느냐에 따라 대상의 문제는 경중 자체가 달라졌다.

  ‘가장 창의적인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비슷한 것은 더 많이 나올 것이고, 비교할 수도 없을 만치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 틈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에 대한 명확한 이해’였다. 분명 나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이 지역에서만 담아낼 수 있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원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그곳에서 단지 ‘인생 사진’만 건지려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새로운 이야기가 자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안목까지 확장시켜 준다면 굳이 그곳을 피할 이유가 있을까. 감성을 소비하고 오늘을 사는 시대로 세대가 급변하고 있다. 즉, 남다른 무엇이 된다는 건 자신만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주목받기 위해 갖은 애를 쓰던 친구가 있었다. 별나게 튀는 색의 옷을 입고, 촌스럽게 과한 화장을 하고 돌아다녔다. 간혹 힐끔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거기까지였다. 한편 새침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독특한 톤의 목소리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사람들은 피식 웃기도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서 꿋꿋했다. 원래 자신이 가진 것 그대로의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목소리 때문에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히려 낯가리는 성격이 사교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굳이 애쓰지 않았고 자연스러웠다. 삶은 각박해졌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은 불변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있었다.

  하루 24시간을 36시간처럼 살아내시는 3명의 소상공인 사장님을 인터뷰하면서 어떤 해답을 깨닫게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치열한 삶, 사업가 정신,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을 차례차례 녹여낼 수 있도록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를 하면서 일하게 되는 동력은 ‘주어지는 일이 항상 있지 않을 수 있다’라는 명확한 사실이다. 그 사실은 나를 긴장하게도 만들고 겸손하게도 만든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체감하게 하며 주어진 것을 고맙게 느끼게끔 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니, 평범한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평범함의 기준이란 대체 무엇인 걸까? 겉보기에 별 무리 없이 순탄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의 삶이 순탄한 게 맞을까? 100명이라면 100명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생각한다. 서로가 알 수 없는 역사를 지녀왔고 자신만의 이야기 하나씩은 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확신한다.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슬퍼할 일은 아니다.

  나만의 특별함 덕분에 조화롭게 사는 법을 서로에게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억지로 특별해지려고 할 필요도 없고 애쓸 것도 없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지어진 모습 그대로 맡겨진 일을 찾아가고 주어진 오늘을 사는 것이 진짜 나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오늘의 인터뷰는 내게 오랜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다. 완연한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이전 18화 너를 넘는 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