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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지영 Oct 26. 2020

나를 주워주길 기다립니다

저기요, 저 여기 있다고요!

 한때, 미니홈피에서 음악 좀 듣겠다고, 도토리를 충전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이었는지를 말이다. 무려 100곡 정도를 갖고 있었으니, 거기에 쏟아부은 도토리를 돈으로 환산하면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다. 누군가는 ‘SNS은 인생의 낭비’라고 하던데, 거기에 버린 시간은 또 얼마일까. 아무렇지 않게 소비한 나의 소소한 재정과 시간은 버려지고 또 버려졌다. 어쩌면 내가 살아온 일부는 버려진 아이템이 되거나, 누군가가 주워주길 기다리는 무엇으로 어딘가에 떠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폐쇄돼서 영원한 기억 속으로 사라진 미니홈피처럼 말이다. 그 안에 담겼던 덧없는 기록과 도토리로 충전한 덧없는 노래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을이 꽃피기 시작한 개롱역 근처에서 듣게 된 음악은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5년 전 여름, 나는 상공회의소에서 시험을 보았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100명이 한 공간에서 시험 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널찍한 공간이 제공되었고, 질서 정연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준비 없이 본 시험은 자극제가 되기도 했지만, 두려움을 보태주기도 했다.

  뒤처진 느낌이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절대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재빠르게 회사에 들어갔다. 또다시 5년이 흘렀다. 일하는 기계처럼 살았다. 주말엔 부족한 수면을 보충해야 했고, 주중엔 그 힘으로 겨우 버텼다. 집 회사 말고는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었지만, 남들보다 처진 시간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무조건 회사에 붙어있자 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공백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 내릴 수 없다.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이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시험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이 시험에만 매달리면서 준비하고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원을 했고,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기회의 희소성을 생각한다면 시험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합격한다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겠지.’     


 시험장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의자는 딱딱했고 차가웠다. 고사장에 입실하려면 우선 열 체크를 해야 했다. 1시간 일찍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있었다. 거리가 멀면 이런 장점도 있기 마련이다. 원래 지각은 제일 가까운데 사는 애가 하는 거라지 않던가. 한창 가을이라고들 하는데, 고사장은 얼어붙어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발이 그대로 땅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부지런한 수험생들 위엔 바지런한 감독관이 있었다. 일찍들 나오셨는데, 고장 난 열 체크기가 문제였다. 열 체크기로 체열을 하지 않고는 입장할 수가 없었다.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가 잠잠해졌다. 보니까 열 체크기를 새로 가져오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껏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지만, 적응하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9개월 전, 이런 사태를 장기간 겪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다. 그러니까 괜찮다. 더욱더 괜찮아질 것이다.



  오랜만에 써보는 OMR카드와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이 낯설었다. 문항은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짧았다. 50문항을 50분에 풀어야 했고, 20문항을 20분에 풀어야 했다. 시간이 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시간은 이 속도보다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을 텐데, 혼자 일하면서 나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진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됐다.

  200개가 넘는 인성검사 문항을 풀고, 넉넉한 쉬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시험을 보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시험의 달인이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수능시험, 대학 입학 실기시험까지 시험이란 시험은 볼 수밖에 없던 시험충이었다. 받아쓰기 시험, 쪽지 시험, 모의고사, 영재반 시험, 아이큐 시험, 자격증 시험, 면접 시험 등 정식 시험이 아닌 시험과 지면이 아닌 대면으로 치르는 시험까지 헤아린다면 수도 없을 것이었다. 수많은 시험 중에서 어떤 시험은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고, 칭찬도 받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고, 결과 때문에 상처 받았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전국 1등이라고 해서 시험이 쉬울까. 시험을 대하는 자세는 모두가 같지 않을까 싶다.     





 ‘결과가 뻔할 텐데, 괜히 시간 낭비 아닐까.’


  가뜩이나 아직 다니기도 불편한 상황이었다. 오가는 거리도 만만치 않았고, 길에서 버려지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굳이 치러야 하는 시험인가 반문했지만, 나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행동이 빨랐다. 그렇게 해서 앉게 된 차디찬 의자였다.

 중학생용 의자가 새삼 작게 느껴졌고, 책상도 마찬가지였다. 쉬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제목도 긴 시험 두 가지를 보게 되었다. ‘직업기초능력 평가’와 ‘직무수행능력 평가’라는 시험이었다. 실제 회사에서 업무 할 때, 능력을 확인해보는 시험이었다. 과연 이런 능력이 다 필요할까도 싶었지만, 똑같은 점수로 앉아있는 사람들을 확실하게 거를 기준으로는 적합해 보였다. 어떤 문제는 넌센스 같았고, 어떤 문제는 아이큐 시험 같았다. 또 어떤 문제는 ‘이건 상식 아니야?’라고 되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 준비한다고 해도 적응이 될까 싶은 문제도 많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일들이 시한폭탄처럼 매일매일 터지는 회사와 같은 문제들이었다. 범위도 제한할 수 없었고 나 자신이 적당하게 제어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다.


  이 문제들을 빠르게 풀어낸다고 해서 회사 업무를 빠르게 쳐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알쏭달쏭한 인생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문제를 잘 풀어도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전공시험 시간이었다. 20문항을 푸는데 주어진 시간은 20분이었다. 순발력과 기본 상식, 내공을 파악하기 충분한 시간이라는 출제자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전공시험은 가장 익숙한 것이지만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인간관계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가깝다 느끼는 순간 멀어지고, 멀어졌다고 느낄 때는 가깝기도 한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문제를 다 풀고 나서야 잘 찍어서 운 좋게 시험 합격했다는 누군가의 말은 겸손으로 위장된 가식이었음을 깨달았다. 잘 찍는 것도 실력이고, 좋은 기운을 받는 것도 실력이었다.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확실한 무기는 실력 말고는 없었다.



  시험이 끝났다. 왠지 따뜻해진 것 같았다. 두 번째 봄인 가을이 꽃피기 시작한 개롱역 주변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편하려고 챙긴 덩치 큰 캐리어가 남부끄럽게 느껴졌다. 거리는 한산했다. 나는 은행나무 아래서 애꿎은 도토리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미니홈피에 오랫동안 걸어두었던 음악이 흘러나왔기도 했고, 폐쇄돼서 다시는 들어갈 수 없다기에 괜히 더 아쉬워졌다. 버려진 시간과 감정은 어떤 아이템이 될 수 있을까. 덧없고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아는 속마음으로 남기고 싶었다.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디쯤 와있을까. 나는 시험을 보았고, 누군가 나를 주워주길 기다렸다. 원하는 길을 가고 있음에도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시험을 봤다. 뭐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시험을 보려고 1년을 하루처럼 간절하게 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주어진 단 하루 한순간을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처럼 준비 없이 시험을 느껴보려고 온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저러나 바라보는 목표는 똑같았다. 그 사실이 서글펐다. 누군가가 알아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었다. 끊임없이 시험을 치고 또 치게 될 것이다. 합격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굴레였다.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건 수많은 시험의 반복이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시험이 없었고,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인생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게 아님을 알면서도 숱한 시험을 보았고, 여전히 시험을 보며 살고 있다. 어쩌면 희망 고문 같은 건지도 모른다. 이 시험을 넘어서면 달라질 거라는 희망 하나로 버티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시험을 치는 것이다. 그 희망이 실낱같은 오늘을 살게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기록된 것들이 공중에 떠도는 부스러기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공간이 바뀌었을 뿐이다. 미니홈피에서 페북으로 페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옮겨왔다. 참으로 덧없는 삶이었다. 어떻게든 노출되려고 하고, 팔로워를 늘리려 하는 것이 억지로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좀 봐달라고, 나를 알아달라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었다. 사실 시험 보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나를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랐고, 누군가가 주워주기를 기다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는 다해보고 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답은 없다. 할 수 있는 한 그게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걱정하는 것보단 무엇이든 하는 게 속 편하다. 때론 그게 힘이 되기도 하니까. 여전히 나는 누군가가 나를 주워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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