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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지영 Sep 30. 2020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긴 합니다만,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지금의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애초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없지 않나.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분명 쌓이고 쌓인 무엇이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임엔 틀림이 없다.

  가령, ‘개독교’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더 많이 기대했거나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거나, 그래서 불만을 품었고 표출하게 된 마음의 한 조각이 아닐까. 그러니 모든 말에는 어떤 역사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요 며칠 사이 SNS를 시끄럽게 달군 포스팅이 있었다. 평소에 글 한 줄 올리지 않던 사람이 구구절절 쓴 걸 보니, 꽤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그 화제의 주인공은 교계에서 상당히 존경을 받고 집중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돌연 사퇴를 선언했고, 오랜 시간 만남을 가져온 사람이 있었음을 밝혔다. 처자식을 속이고, 믿음의 선후배들을 속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속였다. 신앙인으로서 한 가정의 아비로서 많은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며 목자였지만, 그 모든 자격을 스스로 박탈했다. 그 사건으로 그를 믿고 따랐던 이들은 충격을 받았고, 나 역시 간담이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랬던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SNS에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올린 모양이었다. 얘기만 듣기로도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만든 새장 속에 갇히고 말았다. 누가 그를 꺼내 줄 수 있을까. 자책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던 그의 태도에 또 한 번 사람들은 실망했고,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어쩌면 여론을 만드는 것도 일부분의 몫은 자신에게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미투로 시끄러웠던 한 배우가 식음을 전폐하고 지방에서 독수공방 하며 사죄를 구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다는 소식은 대중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유명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처벌받아야할 이들이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건 잠재된 범죄를 키우는 일은 아닐까. 죄책감 없이 그는 시간이 조금만 흘러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사건이 그렇겠지만 유독 미투는 가해자가 없고, 피해자만 있다. 피해자 신상만 털리고, 억울해진다. 아니, 그 일로 피해자는 2차, 3차의 피해를 입는 것 같다. 이를 수용하기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눈물이 나질 않아.”

  “나는 너처럼 사회참여에 관심은 없어.”     


  6년 전에 들었던 이 이야기는 꽤 오래 마음에 남아있는 말이다. 각각 다른 친구의 말이었고,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전자는 가정을 꾸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고, 후자는 소식을 듣지 못한 지 꽤 시간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럭저럭 같이 모임을 하고 만나는 횟수가 일정하게 있었던 이들이었다. 어떤 감정은 없었고, 그들의 말이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2014년 4월 16일, 공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던 나는 학교에 있었다. 막바지 논문 준비로 바쁘던 때였고,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았기에 안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반전되었다. 안산 일대가 노란 리본의 물결로 가득 차던 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단원고 앞을 찾아갔고, 눈물을 흘렸고,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참여’라는 걸 했다. 청년부 예배 시간에는 세월호 추모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준비했지만,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교회에서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 답답했다. 나 혼자 설레발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마음 한쪽이 쓰렸다. 그뿐이었다.



  고작 넉 달도 채 남지 않은 2020년은 여전히 공포감이 가시질 않고 있다. 교회는 다시 ‘개독교’가 되었다. 이웃을 위해 우는 법을 잊어버렸던 만큼 이웃의 고통도 헤아리지 못했다. 몰지각한 개인 한 명의 몫으로 돌리기엔 잘못이 너무 컸다. 과연 그 사람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더 나아가 계몽까지 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가 걸었던 길을 진심으로 걸어봤어야 했다. 그의 마음을 헤아려봤어야 한다. 그래야만 말할 자격이 있다.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도 소용이 없다고 하질 않던가. 그리고 무릎 꿇고, 사죄를 빌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쌓아 올리고 있는가.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고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볼 노릇이다. 불현듯 가을바람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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