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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지영 Jul 24. 2020

모든 일에는 시간이 있다

나를 위해 돌아봄

머리를 질끈 묶고 노트북 하나 챙겨 나왔다. 노동에 지친 나에게 쉼을 주고 싶었다. 바다는 가고 싶지만

멀리 가기는 께름칙하고 귀찮기도 해서 근교 바다를 찾았다. 계획도 없이 몸만 홀랑 나와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어디로든 데려다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불현듯 아무도 없는 텅 빈 도로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 터널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생각보다도 빠르게 돕는 손길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아가씨, 그쪽으로는 차가 들어가지 않아요."

"마시안 해변은 어떻게 가면 될까요?"

"저기 보이는 사잇길로 그냥 들어가면 돼요."

"이쪽으로도 길이 있나요?"

"네, 있어요."


'아, 그래도 되는구나. 이쪽으로 길이 있구나!'


순간적으로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혼자 남겨졌다. 차편이라곤 장시간을 타고 온 버스뿐이었다. 배차 간격은 40분이 족히 넘는데, 또 한 번 기다려야 한다니..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그래서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 발걸음이 데려간 곳은 정확한 길이었다. 순간 마음에서 울림이 들렸다.


너를 움직이게 했던 그 힘을 기억해.

그 기억이 너를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줄 거야.


길을 잃을뻔한 당황스러운 상황이 너무 쉽게 해결되었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도착한 길에서 허기진 점심을 때우고, 발길 닿는 대로 카페에 들렀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무턱대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나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마음껏 해볼 수 있는 날이야, 오늘은.'


틀에 갇힌 삶에서만 살아왔던 내게 이런 일탈은 즐거움이 되었다. 이대로도 괜찮아. 충분히 괜찮아. 바다 카페 창에 붙어있단 해시태그 글자 #힘내 글씨가 꼭 나한테 하는 말인 것만 같아서 자꾸만 바라보았다.


때때로 가만히 길을 내버려 두어도 생각보다 잘 굴러갈 때가 있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였다. 한적한 평일인데, 삼삼오오 아줌마 부대가 몰려왔다. 우리 엄마가 갖지 못하는 자유와 여유를 이들은 갖고 있구나. 엄마를 데려오고 싶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 자신을 몰라서 항상 누군가 원하는 나로 살려고 아등바등 애쓰며 살아왔다. 그것은 내가 아니었고, 내가 될 수 없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컸다.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 만족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수많은 책으로부터 답을 찾으려고 했고, 조언도 들으러 다녔다. 결국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어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 자체는 나를 탐구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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