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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지영 Oct 29. 2020

고민을 푸는 확실한 방법

나 따라 해 봐요, 이렇게!

두 갈래 길을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갈팡질팡하다가 둘 다 놓치기는 싫었다. 하나만 선택하자니 가지 않은 길이 후회될 것만 같았다. 닭고기 꼬치와 떡꼬치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꼴이었다. 둘 다 먹고 싶은데, 동시에 먹을 수는 없는 상황이랄까. 둘 중에 하나만 고르기는 힘든 그런 느낌이었다. 두 갈래 길은 하나 선택하면 다른 길로 다시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뭘 자꾸 고민해. 그냥 다 해봐.”

  “말이 되니. 그게….”

  “말이 안 될 거는 또 뭔데? 해보고 아니면 후회 없이 포기하는 거지. 인생 한번 사는 거야. 뭘 그렇게 고민하니. 진짜.”

  “너는 남의 일이라고 참 쉽게 말한다. 그렇지?”


 뒤통수에 대고 친구가 말했다. 그래, 나는 절대 너한테 말 한마디도 안 질 거야. 그 순간엔 그냥 그러고 싶었다. 몹쓸 자존심이란 게 이럴 때는 평소보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날이 선 말투로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나 역시 남의 일은 쉽게 말하곤 했다. 입바른 소리 같아도 대부분의 조언은 맞는 편이 많았다. 그렇지만 막상 내 상황이 되면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잔소리로만 들렸을 뿐이다.      




  지난 시험으로 마음이 조급해졌던 걸까. 나는 습관처럼 이력서를 넣었다. 연락이 왔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면접이나 보자는 심산이었다.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보는 다대일 면접이었다. 면접 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다. 고민했지만 행동은 빨랐다. 이 상황에서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에서는 답도 없는 갈등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편안한 표정과 달리 내면에서는 파도가 요란하게 들썩거렸다.     

  내 앞에 주어진 갈래 길은 원래 하고 싶었던 일과 할 수 있는 일 두 가지였다.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전자와 비교했을 때, 후자에도 마음이 갔다. 그런데 두 가지를 성급하게 건드렸다가 동시에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초조했다. 물론 모든 두려움은 절반 이상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지만 말이다. 두 가지 모두를 움켜잡고 싶었던 만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할 수 있다면 두 가지를 모두 선택하고 싶었다.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절박했다. 손에서 식은땀이 났다. 지혈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배어 나오는 땀이 그랬다. 손수건으로 손을 가리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요동치는 마음보다 더 큰 두려움이 온몸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기도 했고, 다리를 떨기도 했다. 복 나간다고 말하면서 내 다리를 맵게 때려줄 누군가도 없었다. 세상에 나 혼자 던져진 기분이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긴장해서 그런지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해졌다. 일부러 일찌감치 출발해서 빨리 면접장에 도착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일찍 가서 대기하고 있으면 차분함을 되찾을까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청심환이라도 챙겨 올 걸 그랬다. 별의별 게 다 생각이 났다.     


  “그냥 묻는 말에 편하게 답하면 돼요.”


 긴장 풀라고 던진 말에 한 뼘 더 경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앞에는 5명의 면접관이 나란히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순서 없이 질문은 던져졌고,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의 대답이 불쑥 튀어나왔다. 영어면접도 아니고 어려운 질문도 아닌데 생각처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글은 쓰면 다시 고치고 수정도 할 수 있지만, 말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한번 뱉으면 그만이었다. 쏟아진 물처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말(言)이었다.

  불쑥 튀어나온 말을 다시 포장하느라 진땀을 뺐다. 촬영이라면 중간에 끊고 다시 시작할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5명의 면접관에게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었다. 말 습관, 눈빛, 행동, 표정, 말투, 뉘앙스가 점수로 환산되고 있었다. 그들이 던진 몇 가지의 질문은 나란 사람을 판단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근거로 정리되었다. 적절하게 당황하면서 어느 정도 호응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만족하는 눈치였다. 면접관은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의 질문은 탁월했고 예리하다. 그래서 좋은 직원을 만날 수밖에 없다고 자신했을 것이다. 탁월한 필터링으로 수많은 이들을 걸러냈던 것처럼 ‘면접의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나는 ‘면접의 여왕’이었다. 이력서를 뿌리는 만큼 면접의 기회가 생겼다. 그때 나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회사여도 간이고 쓸개고 빼주면서 말했다. ‘일단 합격을 하고 나서 생각하자.’라는 주의였다. 당당하면서도 씩씩한 어조였다. 묻는 말에 놓치지 않고 대답하고자 했다. 평소보다 목소리는 한껏 올렸다. ‘솔’부터 시작하는 목소리였다. 모든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잘 모르더라도 정직한 것이 백배 낫고, 의욕이 넘치는 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면접에서 합격통보가 왔다. 그중에서 고를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선택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직원을 회사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는 태도는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다 버려져 못쓰게 되면 새로운 부속품을 끼워 넣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고 관심을 쏟아붓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관행은 ‘차별이라는 서슬 퍼런 격차’를 심각할 수준으로 격상시켜 놓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 아닌 척 가면을 쓰는 면접은 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더 사람 냄새를 내기로 했다.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직위가 나를 증명하지 않고, 실수한 모습이 나의 전부도 아니다.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했다. 나 자신에 가까워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합격만이 정답도 아니었다. 상위 1%를 지탱해주고 있는 99%가 없었다면, 1%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랐을 것이다. 나다움이 사라진 답변은 내 것이 될 수 없고 나도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합격했을 경우, 사라진 나다움을 채우고 포장하기 위해 두 배로 더 힘들었을 것이다.

   우선은 후회 없이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과거의 허물을 벗고, 나 자신이 되려고 노력했다. 나는 사교적이지는 않지만 낯선 대인관계에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칭찬은 했지만, 터무니없는 아부는 하지 않았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라고 배워서 그대로 했다. 어느 정도의 의지가 있는지를 밝혔고,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이모저모로 풀어내니 속이 편해졌다. 쭈뼛쭈뼛하면서도 할 말은 했고 나름의 소신이 뚜렷하다는 피드백도 받았다. 점수를 떠나서 의미가 있었던 면접시험이었다.      

   운명론과 예정론을 믿지 않지만, 나는 사람마다 주어진 길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태어날 때부터 각 사람에게 맡겨진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찾아가는 게 인생이고, 그 과정 가운데서 여러 가지 길을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두 갈래 길 앞에서 멈춰 설 수 없었다. 시간과 순간은 지나가면 그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딪혀보기를 스스로 시험해본 것이었다. 결과는 ‘하면 된다’였다. 후회하더라도 해보고 하는 것과 안 해보고 하는 건 천지 차이이다. 하나의 문이 열리면 다른 문은 닫힌다고 한다.

   실행 버튼 키를 누르면 오히려 잡념이 없어진다.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존재의 증명이니까 말이다. 이제 더는 고민으로 헛된 생각을 하는 것에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선택하기 어려운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난다면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좋다. 정답은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한 간단하지만 정확한 질문부터 하나씩 차근차근하면 된다.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니까 말이다.


   고민을 푸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직면하면 된다. 몸소 부딪혀보는 것이다. 답도 나오지 않는 고민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생산적이다. 왜냐면 어떻게 하든 결괏값은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 된다. 그러면 아주 명료하게 상황이 정리된다. 경험한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실패도 마찬가지다. 실패는 많이 할수록 더 좋다.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 앞으로도 더더욱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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