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지영 Aug 23. 2020

관계의 온도

차갑거나 혹은 뜨겁거나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순간은 온전히 내 기억에 따른 것이다. 미운 4살이라고 했던가. 아이의 고집을 꺾는 시기는 대부분 그때라고 하던데, 그때 내가 처음 엄마에게 반항이란 걸 했다.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는 회초리를 들고 나를 쫓아다녔고 나는 연거푸 ‘아니’라는 말을 내뱉으며, 돌고 돌았다. 맞았다는 기억보다는 뱅글뱅글 돌았던 기억이 더 선명했다. 맞았던 것보다 매를 피하려고 계속 뛰고 도망갔던 것이 더 오랜 기억에 남았다.

  기억 속의 나는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다. 혹시 내가 기억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이 더 있었던 건 아닐까. 안경을 쓰고 달리기 하면 너무 어지럽다. 그때 나는 안경도 안 썼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왜 그렇게 현기증이 나는 걸까. 철퍼덕 넘어지면 좋으련만 기억 속의 나는 계속 돌고 또 도는 중이다.

  최초의 기억이란 어떤 외부의 자극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순간을 오래 기억하는 것 같다. 이 상태로 어른이 되면 그 기억은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는다. 5세 이전의 기억일지라도 강력한 충격이나 외부 압력을 느낀 일이라면 기억은 상당히 또렷할 수 있다.



  볼펜을 돌리고 돌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기를 쓰고 튀어보려고 애쓰는 친구들이 내 주변엔 참 많았다. 그 친구들은 항상 내 곁을 전전하며 자신이 돋보일 수 있게 해달라고 무언의 압박을 했다. 왜 저렇게 아등바등 사는 걸까. 그때의 나로선 이해 안 되는 측면이 있었다. 존재감이라는 건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부분인 건데, 왜 저렇게 살까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나는 그저 옆자리에 앉았던 것뿐인데 뒤통수를 맞은 걸 보면 그게 한계점이 아니었나 싶다. 햇수로 7년 세월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열 길 사람 속을 아는 건 아닌가 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안다는 것, 마음을 내어주는 진짜 옆자리 친구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서 만들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야 그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는 진가를 알게 되는 건 자명한 일. 몇 년을 못 보다가도 다시 만나면 그저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어릴 때 친구들이 좋다고 하는가 보다.



  여고생 때 만난 친구는 그저 나에게 친구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엄마, 또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세월이 흘렀고 나이가 들었지만, 우리는 무조건 만나면 여고생이 된다. 호호백발이 되어서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만 늙었지 마음은 이팔청춘이라고 말씀하시던 어르신의 이야기가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내가 지금의 상태에서 또 다른 무엇이 되더라도 나의 열여덟을 아는 친구가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기 때문에. 그때만큼은 다른 이름의 책임감 없이 홀가분할 수 있으니까. 그런 친구 한 명 가졌다는 것이 세상 다 가진 기분이다.


   살면서 대략 만 명의 사람을 만난다고 하여 어떤 한 시인은 <만인보>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어떤 이유로든 우리는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어쩌면 지금 또한 그런 과정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19가 계속되면 온라인 만남이 더 익숙해질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만큼 대면하는 만남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때때로 내게 좋은 말보다 자극을 주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을 필요가 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고는 하는데, 그런 말 중에서 나를 지켜줄 영양가 있는 말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상황을 통해서 분명 성장할 수 있는 계기는 될 것이다. 그건 나 자신에게 달렸다. 삼키든지 뱉든지.     


 “악착같은 면이 있어요.”

 “승부 욕이 있고, 참 알뜰해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똑똑하고 야무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낯설었다. 이럴 경우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다. 누군가 안경을 쓰고 나를 판단한다거나 아니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파악했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내가 맘에 들지 않아서.     


  의견이 비교적 명확한 편이었지만, 참고 넘어간 순간이 많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고, 그게 습관이 되었다. 늘 생각했다. 특별히 나를 건드리거나 공격하는 게 아니면 그냥 넘어가자. 무릎을 꿇는 게 습관이 된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머리채를 잡고 싸울 만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된다. 속에서 분노가 끓을 때, 주로 나는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사람 머리채를 잡는 게 어찌 쉬운 일인가. 그렇게 맞대응한다고 해서 남는 게 뭐가 있을까. 감정이 이성을 앞서가려 할 때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 그 말을 누가 했느냐는 것. 나보다 어린 사람인지 나보다 선배인지 그 사람이 보통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편이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애정도 있어야 싸울 수 있는 법. 굳이 힘들여서 싸울 필요도 없을 만큼 의미 없는 관계는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만이다. 힘들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생각보다 내 사람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조금 마음이 서늘해지더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든 일에 일방적인 건 없다고.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원인은 제공했기 때문에 발생되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혼자 잘못한 건 없다고. 타이밍이 급작스러워서 당하는 쪽이 억울할 수는 있지만, 가해자는 미리부터 오래 생각했던 일일 수 있다고.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다면, 당장에 머리채라도 잡았을 텐데.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지만, 그때 나서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어떤 맥락에서 나를 그렇게 봤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를 잘 모르고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그도 나를 잘 모른다. 그래서 그만큼으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걸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너무 쉽게 판단하지 말자. 결국 나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상처를 많이 받아본 사람이 상처 받은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는 법. 무릎을 꿇고 세상을 바라보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다. 먼저 듣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누군가 던진 말 한마디에 쿠크다스처럼 부서지던 그런 아이는 이제 없다. 무기력증에 빠진 것보단 의욕적인 삶이 좋다. 그래서 나는 지금 ing.     

이전 05화 남의 속도 모르면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