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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기술이다

by 이을

감정은 기술입니다.

감정은 단지 지나가는 기분이 아니라, 삶을 지켜내는 기술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생각해 보면, 기술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있다면 좀 다르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기술이 있다면 훨씬 나답게, 그리고 정교하게 깊어질 수 있고, 나의 감정, 나의 속도, 나의 기호에 맞춰 '나답게' 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 감정을 돌보는 기술이 있다면 마음속에 불안이 올라오는 날에 익숙한 기술로 내 마음을 잘 살펴보고, 보듬어 줄 수 있습니다.

물론, 그건 쉽지 않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내가 아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렇게만 해도, 감정에 휘둘려 비관적으로 매몰되거나, 이러한 혼란스러움에 갇혀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흔들림 속에서도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갑자기 되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분명히 나아지고 있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을 때, 그냥 마트에서 파는 믹스커피를 타서 마셔도 됩니다. 하지만, 기술이 있다면, 방법을 안다면, 조금 더 정성을 들여, 나를 위한 커피, 내 기호에 맞춘 커피를 만들어 마실 수 있습니다. 신선한 커피 원두를 골라서, 직접 갈고, 내리는 과정을 통해 훨씬 진한향과 여운을 즐기는 기쁨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감정을 다루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기술 없이도 감정을 따라 살 수는 있지만, 감정을 다룰 줄 안다면 훨씬 더 깊고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갑자기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안한 감정 상태가 되면 뇌의 반응도 함께 불안정해지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듭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종종 외로움, 공허함과 함께 뒤섞여 올라오곤 합니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는 약속을 잡습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시간이 맞는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는 등… 무언가 충동적으로 감정을 흘려보내려고 합니다. 이렇게 보내면 일시적으로는 감정이 해소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기에 오히려 후회와 공허함만 남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기술은 이런 순간에 더욱 필요합니다.

훅 하고 들어온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 감정을 멈춰서 바라볼 수 있는 힘. 그것이 감정을 기술로 다룰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누구든지 불안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고, 조급해지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합니다.

이 감정들은 과연 이유 없이 갑자기 들어왔을까요?

아닙니다. 감정은 무작위로 솟구치지 않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과거나 현재 우리가 놓친 어떤 자극, 또는 미처 처리되지 못한 생각, 혹은 오래 눌러온 감정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자극을 받아 밀려오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면 내 몸과 마음은 결국 그 감정을 더 큰 방식으로 드러내려 합니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빈정거리면서 "어라~ 피하네!" "더 큰 것을 보내볼까?"라고 형태만 바꿔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하거나, 숨이 가빠지고, 이유 없이 피로감이 지속되고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만 있게 만들면서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합니다.

그렇기에 감정을 기술처럼 다루는 것은 자기 관리가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기술, 능력, 힘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감정의 기술은 불안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고, 현재 상황에 올라온 이유를 분석해 보는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럽게 불안이 올라올 때,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나?" "지금 이 불안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경고하고 있나?" 등의 방법으로 불안한 감정을 바라봅니다.


며칠 전 배우 윤시윤이 한 프로그램에서 자신은 원래 게으르기 때문에, 한없이 나태해질까 봐 더욱더 철저하게 분단위로 시간을 정해 놓고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 안의 허약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꽉 붙드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자신을 너무나 억압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그의 모든 행동은 '자기중심적'인 내면의 파장을 감지한 후, '자기 존중'이라는 카테고리 중에서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잠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도 그 배우가 지금처럼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사실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 역시 제 안에 불안정하게 버티고 있는 '나약한 나'를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요.

그 마음은 어찌 보면 같을 수 있으나, 윤시윤과 다른 대처방식으로 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감정은 조절해야 해"라는 익숙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감정은 조절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연결해야 할 신호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 안에 복잡하게 얽힌 감정 속에서 신호가 오면 잠시 반응을 멈추고,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아기를 씻겨주는 엄마처럼 소중하고 정성스럽게 바라봐주며 닦아주고 보송보송하게 말려주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누군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도 스스로를 지키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보내고 나면 다시 나를 정돈하면서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감정은 기술입니다.

우울하다가도 갑자기 괜찮아지기도 합니다.

우리를 오르락내리락 감정의 파도 위에 놓이게도 하고,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 대게 하기도 합니다.

감정의 기술을 휘둘리지 않고 내가 사용한다면,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 나를 지켜주는 힘‘입니다.


오늘 제 안에 심한 불안이 올라왔고, 다행히 불안 뒤에 숨겨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찾고, 마음을 다스려보며, 이렇게 브런치에 제 마음을 기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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