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수련 중입니다.
스터디카페의 아침을 여는 청소 아르바이트 1시간이 모여 39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 시간 동안, 몸은 반복적인 청소 작업을 하고, 귀로는 원하는 책을 귀로 들으면서 심리적, 인지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기계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내 손과 발, 그에 반해 일본의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의 [도망칠 용기]를 듣는 나의 정신은 고요하다. 몸과 정신이 따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오랜 시간 내 머릿속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시간을 소비하는 삶을 살았다. 오래전, 내가 했던 사회생활은 힘든 곳도 있었고, 겉보기에 안정적이고 괜찮아 보이는 자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내 안에서 가치와 방향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 나는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들을 머릿속에 빼곡하게 정리하여 나를 설득했고, 결국 퇴사하는 걸로 결정하곤 했다. 이렇게 사표를 쓰기로 결정했으면, 그 결정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마치 전쟁이 일어난 듯 수없이 나의 결정을 반복해서 되짚어보는 불안이 요동쳤다. 결정을 이미 했으면서, 생각 위에 또 다른 생각을 얹으며, 내 결정을 하나하나 분해시켜, 다시 맞춰보고, 또 분해시켜, 다른 모양으로 맞춰보면서, 귀한 시간들을 소모하곤 했다.
생각들로 시간을 써버린 걸 자책하며, '다른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미성숙하게 외줄 타는 심정일까?'라고 나를 못살게 굴면서 나를 스스로 한없이 작고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왜 그렇게 견디지 못했을까?
라는 부정적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를 탓하면서 포기했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언제나 '살아있다'는 느낌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 안에 '의미', '이유' , '비전'이 없으면 지속하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 시절의 나는 늘 혼란 속에 있으면서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공간에서 외로웠다.
나는 전공을 바꾸고, 휴학을 하면서 대학을 오래 다녔고, 대학원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내 삶의 이력서'에는 멈춤과 시작이 반복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돌고 돌아왔다.
내 인생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느껴졌던 나의 번뇌도 시간 속에서 쌓이고 쌓이니, 쓸모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되돌아보며, '고생 많았다'라고 말해줄 수 있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안아주려고 노력한다.
마음이 힘들 때는 '왜 힘드니?' '힘들었겠다.' '힘들구나, 그럴 수 있어' '괜찮아' '나는 너를 알아, 잘하고 있어' '너 잘못이 아니야.', '너를 믿어.' '잘했어!' 등등의 나를 이해하면서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 실행하고 있다.
때로는 생각한다.
만약 그때마다 도망치지 않고, 조금 더 버텼다면 또 다른 삶을 살았을까?
하지만 이내 이렇게 답하게 된다.
물론 다른 삶을 살았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마음속으로 답하게 된다.
'결국 나는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나'라는 근본적인 뿌리(?)…는 변하기 힘드니까..
이런 생각이 들자, ‘왜 그랬을까?'의 해답을 찾기보다, '그때는 그럴 수 있었어.'
그렇다고, 지금도 똑같이 결정할 필요 없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나 역시 조금씩 성장했으니까.
성장한 만큼 예전의 나보다 좀 더 나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어차피 지난 과거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과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지금 현재인 오늘과 미래의 내가 살아가게 될 미래가 소중하니까.
작가는 말한다.
현재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버티지 말고, 도망가도 괜찮다고 속삭여준다.
단, 도망으로 인한 손실이나 손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아주 자세하게 방법을 알려준다.
사람에게 또는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내가 주인공이 되어 가장 실용적인 결론을 내리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용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필요할 때 바로 용기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은데, 사실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혹시, 누군가 '왜 나는 용기가 없을까?'를 고민할 수 있다.
생각은 다시 생각을 올라오게 한다.
그 생각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마음이 용기보다는 먼저 가져야 할 힘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조절하려면, 내 마음을 바라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산에 오르다가 너무나 숨이 찰 때는 멈춰야 한다.
숨을 고르고, 잠시 쉬면 다시 올라갈 힘이 생긴다.
산에 다니는 것이 익숙해지면, 내 숨을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멈추지 않아도, 힘이 있다.
우리 삶도 산에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숨 고르기가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 나의 숨 고르기가 '도망'이라고 생각한들 무슨 상관이 있나 생각해 본다.
어차피 나는 다시 시작할 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