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래트럴: 기회는 깨어 있는 자의 것이다

by 소나무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그 선택들 속에서 단 하나의 '기회'가 우리 삶에 찾아오기를 바란다.『콜래트럴』은 이러한 삶의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긴박한 사건들을 통해 말해 준다. 기회는 언젠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앞에 있으며, '기다림'은 결국 행동하지 않기 위한 자기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인공 맥스는 평범한 택시기사다. 언젠가는 리무진 회사를 차릴 거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던 그에게 살인 청부업자 빈센트가 손님으로 타면서,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뒤바뀐다. 처음엔 협박받는 피해자였지만, 어느새 연쇄 살인에 휘말리고 살인의 공범처럼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타깃을 향하던 도중, 그는 깨닫는다. 이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힘은 처음부터 자기 안에 있었다는 것을. 그는 마침내 저항을 선택한다. 그렇게 소시민과 킬러의 대결은, 끝내 자신의 신념을 세운 맥스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두 인물의 변화와 대비를 그린다. 맥스는 점차 빈센트의 냉정함을 닮아가고, 빈센트는 그 안에서 흔들리는 인간성을 드러낸다. 서로의 결점까지 마주한 두 인물은 점차 가까워지지만, 그를 더욱 혐오하게 되는 맥스와 달리, 빈센트는 감정적 유대에 가까운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두 인물은 서로의 거울이자 대조물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직업을 가졌으나, 내면은 나아가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다. 사회 속에 고립된 존재들로, 자신의 ‘역할’에 매몰된 채 진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맥스는 점차 자신과 빈센트 사이의 선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고, 결국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극적인 변화를 선택한다. 반면, 빈센트는 자신의 계획을 여러 차례 방해한 맥스를 끝내 죽이지 못한 채, 오히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인간임을 끊임없이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변화하지 못하고,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눈 채 지하철에서 대치하는 마지막 순간. “사람을 죽이는 건 내 전문이지”라던 빈센트는 코앞에 있는 맥스를 단 한 발도 맞히지 못하고, 생전 처음 총을 쥔 맥스의 총에 쓰러진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자리에서 조용히 주저앉은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A guy gets on the MTA here in L.A. and dies. Think anybody will notice?”


그는 정말로 맥스를 죽이지 못한 걸까, 아니면 죽이지 않기로 한 걸까. 살면서 처음으로 깊이 알아가고 동질감을 느낀 존재를 향해, 빈센트는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맥스가 끝내 자신이 하지 못한 “진정한 삶을 위한 주체적 선택”을 해냈다는 사실을, 어쩌면 내심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 마지막 한마디는, 무심한 도시 속에서 자신을 기억해 줄 단 한 사람에게 남기는 조용한 작별 인사였는지도 모른다. 숨 막히는 두 시간의 서사는 그렇게 끝난다. 그러나 영화는 끝났어도, 그들이 남긴 질문은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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