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며
“하.......”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한숨은 쉬면 쉴수록 또 다른 한숨을 불러온다는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삶의 무게가 나를 엄습할지라도 걱정을 걸어두는 나무에 잘 걸어두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1)23년 2월 제 편지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나무도 더 이상 저의 고민과 걱정을 걸어둘 수 있는 가지가 없나 봅니다. 걸어두지 못 한 걱정들은 갈 곳을 몰라 입으로 튀어나옵니다.
대부분의 수도권 지하철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는 노선들입니다. 이 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저 역까지만 가는 열차입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열차는 한 번 지나간 역을 반대 방향으로 타지 않는 이상 다시 갈 수 없습니다. 지하로 가는 열차라면 별다른 풍경이 없지만 행여나 지상을 달리는 구간이 있다면 순간순간 바뀌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그래서인지 상경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강을 지날 때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는 합니다. 한편, 시작과 끝이 모호한 노선이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이 노선은 다른 노선들과 확연한 차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한강을 가운데 두고서 강남과 강북을 크게 한 바퀴 도는 형태의 노선입니다. 그래서인지 2호선에는 꽤 유명한 역들이 많습니다. 강남, 잠실, 서울대입구, 홍대입구 그리고 왕십리까지.2)약간의 사심을 담아 유명한 역을 선정하였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처음에는 2호선의 유명한 역에 놀러 다니기도 벅찼고 아직 가보지 못 한 역들도 많습니다. 초록색으로 그려진 노선도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서울을 양팔로 가득 감싸 안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꽤 아늑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디를 가는 것인지 잔뜩 신난 표정으로 놀러 가는 사람들부터 삶의 고단함을 안고 있는 직장인 그리고 지하철 관광을 하러 나오신 노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여기저기 뿌려주며 부지런히 서울을 뱅글뱅글 돕니다. 특히 2호선의 경우 일부 구간이 지상으로 달립니다. 덕분에 꽉 막혀있는 도로를 보며 막히지 않는 지하철의 위용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2호선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하로 가다가 바깥으로 나오는 그 구간에서 받는 햇살이 좋고, 한강을 건너며 바라보는 서울 한복판의 이 넓은 강의 힘찬 발걸음이 좋습니다.
살아가며 끊임없이 삶에 대하여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잘 살아간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파생되는 질문들을 정리하기 위해 때로는 사물에 빗대어 보고, 때로는 추상적인 관념을 빌려오며 또 가끔은 굳이 정리하지 않고 끝맺습니다. 온점이 아니라 반점을 찍으면 또 다음에 생각할 여지를 남겨둘 수 있다는 핑계를 대어봅니다. 출근길 5호철 지하철에서는 삶을 마치 5호선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작과 끝이 있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없다는 점도 비슷해 보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왔고 군대를 전역하더니 이제는 또 학교를 졸업할 시기가 다가옵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 제법 마음에 드는 정리입니다. 누가 평가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꽤 마음에 드는 상황이 올 때면 괜히 으쓱해지고는 합니다. ‘그래, 삶은 이 5호선 같은 거야.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지. 쉴 틈은 아주 잠깐 문이 열리는 그 찰나뿐이지. 잠시 쉬고 나면 다시 신발 끈 꽉 묶고 가야 하는 거야.’ 모름지기 삶은 지치는 순간에도 속도를 줄일지언정 계속 노를 젓는 것처럼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게 지하철 5호선에 빗대어 삶을 표현한 것은 아주 적절해 보입니다.
한숨을 쉬지 말아야지 하는데 자꾸만 올라오는 스트레스를 빼내기 위해 땅이 꺼져라 내뱉습니다. 스스로 해결 가능한 문제라면 기를 쓰고 해결할 텐데 지금 맞닥뜨린 문제들은 제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거나 순응하는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부정적 에너지는 주변의 부정적 에너지를 흡수하여 더 큰 부정덩어리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을 포기한다는 옵션은 애초에 없기에 그냥 또 묵묵히 살아갑니다. 춥디추운 겨울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나무에는 푸릇푸릇 한 새싹이 올라오며 무채색의 계절의 끝을 알리며 알록달록 옷을 입은 꽃들도 올라옵니다. 삶에도 그런 춘삼월이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더 이상의 고민과 걱정은 없는 그런 나만의 유토피아 말입니다. 그러나 삶을 너무도 진중하게 대했던 탓인지 늘 어려움이 따라옵니다. 입시의 어려움이 끝나면 서울의 삶이 마냥 즐거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루하루가 살아남기였습니다. 그 살아남기가 익숙해지자마자 나라를 지키러 떠났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제 삶을 책임지기 위해 압박감이 죄어옵니다. 지난해는 살면서 가장 많은 한숨을 쉰 1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한숨을 내쉬고 겨우 맘을 다잡자 또 다른 난관들이 찾아와 또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학교에 다시금 적응하고자 다니며 준비한 자격증 시험은 또다시 제 부족함을 들추며 한숨 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액운이 끼었나 싶을 정도로 하고자 하는 것들이 죄다 안되어 나날이 예민해지고 깊은 수렁에 빠진 것만 같아 발버둥 쳤습니다. 그러다 새해가 되고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가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어느 조직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잠시 며칠 간의 유토피아가 찾아오더니 다시 업무적 스트레스가 저를 찾아옵니다. 처음 겪어보는 압박감과 상황이라 어찌할 줄을 몰라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조직의 막내가 건방지게 어른들 앞에서 한숨을 푹푹 내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장실을 갈 때, 퇴근할 때 남몰래 내쉬는 한숨이 우습게도 참 달콤한 한숨입니다.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힘들어지고 다시금 나아지면 또 힘든 순간이 찾아옵니다. 정말이지 웃기고 슬픈 ‘웃픈’ 상황입니다. 5호선 같은 인생은 역시 힘들구나 생각하다 어쩌면 2호선과 같은 삶이 아닌가 합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것 같아서. 하나의 어려움은 끝이 있지만 삶의 어려움은 어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다음 역으로 가는 것은 같지만 어려움 자체의 시작과 끝은 출생과 죽음이라는 보다 큰 영역으로 확장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 봅니다. 크게 보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결을 같이하며 작게 보자면 다음 역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난관을 맞닥뜨린다는 부분이 2호선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했던 생각을 번복하고 다른 방향으로 또 생각들 때 내가 틀린 것인지 아니면 삶이 워낙 다채롭고 정의 내리기 어려워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또 이렇게 하나의 생각을 얻어 갑니다.
2호선 같은 제 삶을 사랑합니다. 뒤집기와 일어서기부터 난관을 이겨내는 과정이었고 지금의 어려움도 생후 몇 개월부터 2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어려움을 극복해 온 노하우로 이겨낼 것입니다.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잠시 쉴 수 있다고 했지요. 하지만 2호선은 지상으로 달리는 구간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깥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유토피아로 달려가는 과정에서 잠시 아름다운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찰나의 여유를 가져봐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출근하는 길, 사무실 앞에 있는 벚꽃나무에 벚꽃이 피었습니다. 힘들고 피곤해 한동안 출퇴근길에 앞만 보고 다녔는데 어느새 연분홍빛을 가득 머금고 짧지만 강렬하게 봄이 왔음을 알리는 벚꽃이 피었습니다. 오늘 하루 퇴근 때 찾아오는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에서 나는 바깥 풍경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