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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이거나 급진적이거나

변화를 마주하며

by 영영

늘 그렇듯 연말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화기애애합니다. 정신없이 휘몰아친 1년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느라 모두가 분주합니다. 각자의 삶이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연말을 이용하여 만나고 직장에서도 소소하게 이런저런 약속들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바쁜 12월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1월이 되었습니다. 사실 12월 31일의 태양과 1월 1일의 태양은 서로 다른 태양이 아닙니다. 전자기기 전원 스위치처럼 딸-깍 소리와 함께 전과 후가 극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스피커의 소리 조절 장치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그래서인지 새롭게 맞이하는 한 해가 사실 그렇게 반갑거나 가슴을 벅차게 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래도 2025년의 1월은 몇 가지 변화가 있긴 했습니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외국처럼 태어나면 0살이고 생일을 기점으로 나이를 먹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그 셈법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래 우리가 나이를 세던 방식으로 나이를 셈하자면 이제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지난달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을 만큼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겨우 한 달이 지났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역시나 없습니다. 여전히 그만한 깊이와 내공을 갖추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변화가 제법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술 먹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고 알고 싶었습니다. 친구들과 몰래 술을 구해다 마셔보거나 그랬으면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한 일탈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터라 스무 살이 되고 술을 마실 때 진짜 스무 살이 된 것 같아 신기하고 조금은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늘 집에서 학교를 다니며 규칙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부터 집을 나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다채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그 다채로움이 버겁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모습도 제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그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조금씩 적응하고 변화하며 갓을 쓴다는 약관(弱冠)의 10년이 지났습니다. 한 번에 바뀐 것은 없지만 조금씩 바뀌었고 그 변화의 시간을 지나오며 조금은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로이 맞이하는 이립(而立) 또한 또다시 앞자리가 바뀌기 전까지 10년 동안 차차 이루어갈 무언가가 아닐까 하며 급하게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서른 살이 되었다고 급격하게 전원 스위치를 똑딱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10년 동안 볼륨 조절기를 조절하듯 점진적으로 발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스스로 꾸준히 움직인다면 불혹을 앞두고서 조금은 도덕 위에 서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 하나의 변화가 있습니다. 근무지가 바뀌었습니다. 입사 이후로 늘 근무지의 불안정성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타지인 서울에서 ‘살아남기’를 10년 가까이 해왔기에 타지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외로우며 힘든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 이전의 삶의 절반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남다 보니 제법 서울에서의 삶에 안정성도 느끼고 더 이상 살아남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약간의 위기 속에서 종종 찾아오는 행복과 감사를 즐기는 법도 배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직장은 겨우 찾은 저만의 그 안정성에 불안정성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입사 이후로 늘 걱정이 가득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 불안정성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새해를 며칠 앞두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전으로 가라고 합니다. 착잡했습니다. 3주 정도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지금 일하는 근무지에서의 일들을 정리하고 후임자를 위해 인수인계할 시간을 준 것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의 분위기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대전이면 제법 거리가 되는데 왜 그렇게 멀리 보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겨우 3주의 시간밖에 주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실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입니다. 서울 한가운데서 잘 근무하던 인원을 갑자기 대전으로 보내는 것도 모자라 주어진 시간이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대전이면 다행스럽다고 할 위치이고 3 주면 정말 많은 시간을 준 것입니다. 사실 국내로 보내는 것이면 다행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동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5일 뒤 다른 지역으로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은 친구도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로 이동하며 3주의 시간을 준 것은 제법 여유 있고 다행스러운 인사발령인 것입니다. 물론 연초를 앞두고 급하게 인사발령을 낸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제법 분노하였지만 어쨌든 약간의 대비 시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마음의 준비라고 할 것이 따로 있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마주하여 부딪히며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대전을 왔습니다. 이 변화는 ‘스위치적인’ 급진적 변화입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저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왔습니다. 단 하나의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모든 것이 낯선 이곳에서 언제 다시 날지 모를 인사발령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남아야 합니다. 분명 이곳에 왔기에 좋은 점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그 좋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늘 좋고 귀한 것은 누가 탐을 낼 수 있기에 조금은 숨겨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만이 그 좋음과 귀함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남기’ 유경력자로서 이곳에서의 삶에 조금 더 빠르게 적응하고 그 좋고 귀한 것이 무엇인지 차차 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의 변화는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제가 조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 내면에서 발산되는 힘보다 외부의 힘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변화에 대한 거부반응이 큰 편입니다.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상황을 인정하고 그 상황 속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 잘 못합니다. 제가 원하지 않았기에 그 변화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점진적이든 급진적이든 변화는 필연적이기에 인정하고 그 속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법을 배워보려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10년의 과제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급진적인 변화가 찾아온다면 그에 걸맞게 저도 조금 더 탄력적으로 수용하고 인정하고 점진적인 변화가 찾아올 때는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변화를 수용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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