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속편을 꿈꾸며
부모님이 서울에 오셨었습니다. 오랜만에 부모님이 오신다고 말씀하셨을 때부터 어디를 모시고 갈지, 어떤 식당을 함께 가볼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은 오셨던 터라 꽤 이곳저곳을 가보았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오신다는 소식은 여전히 반갑고 설렙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가 서울에 온다 하여도 어디를 데리고 가면 좋을지 고민하고 찾아보는데 부모님이 오시면 오죽하겠습니까. 5월부터 민간에는 처음 개방되는 청와대를 부모님과 가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홈페이지에서 예약도 했습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부모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날씨가 말썽입니다. 하필 장마 기간과 부모님이 오시는 기간이 겹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매일 같이 일기예보를 들여다봤습니다. 날씨는 하늘에 맡기고 저는 제 할 일들을 합니다. 식당 선정도 마무리되었습니다. 굵직한 메뉴만 정해두면 나머지는 그때그때 부모님께서 드시고 싶어 하시는 식당으로 모실 생각이었습니다. 비가 올 때는 오더라도 부디 나들이를 위해 예약까지 한 날 만큼은 하늘도 쉬어주길 빌었습니다. 간절함이 통했나 봅니다. 부모님이 오신 기간 동안 생각보다 날씨가 괜찮았고 청와대 관람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청와대에서 나와 안국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문득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부모님과 함께 갔던 모든 곳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희미한 그림들 사이에서도 강렬한 색채로 남아있는 몇 군데가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제법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곳이었고, 처음 가보거나 몇 번 가본 적 없는 그런 장소라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지역 명소나 맛집을 출발 전 미리 확인하고 가야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들이 가는 날 운전석 뒤에는 가볼 만한 관광지나 식당 위치가 인쇄된 종이 뭉치가 있었습니다. 스마트폰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비게이션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전국 지도 책자를 펼쳐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조수석’에 앉으시는 어머니는 ‘조수’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가족 모두가 초행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앞장서서 가셨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갔습니다. 들어선 길이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아니면 되돌아갔고, 지름길이 있어도 그것을 모른다면 정석적인 길로 가야 했지만 모두가 초행길이었기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헤매는 그 순간마저도 진정한 ‘나그네의 행보’가 되어 새로움으로 다가오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어디를 가든 아버지는 항상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고 가셨습니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또 그 자태를 바꿔가는 때가 되고 나니 스마트폰이라는 녀석도 세상에 존재하고, 뒤따르던 자식들은 성인이 되었습니다. 사전에 찾아본 뒤 인쇄를 해야 했던 그 정보들이 이동 중 몇 번의 손놀림이면 바로바로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낮아진 접근성, 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녀들의 성장 이 세 가지 요인이 적절하게 섞였나 봅니다. 언젠가부터 나들이 갈 때 어떤 장소를 구경하러 갈지, 어떤 식당에서 무얼 먹을지 찾는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운전석 뒷자리에는 낯선 장소들이 빼곡하게 적힌 종이가 꽂혀 있지 않습니다. 어디 갈지 알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방문 후기를 찾아보고 장소 선정하는 이 과정이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아직 가보지도 않은 장소를 마음속에서는 이미 한 번 가본 것 같기 때문일까요? 그렇게 해당 장소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저나 누나가 앞장서서 걷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 부모님이 계십니다.
청와대에서 나와 삼청동을 통해 안국역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걸음이 빠르신 아버지가 앞장서서 걸으시다 멈칫하십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여쭤보십니다. 그 순간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물론 아버지께서 제 글을 보시면 “너는 서울에 살잖니. 그럼 네가 길을 더 잘 알겠지.”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동네라 약간의 지리는 알고 있었지만 제가 느낀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세대교체였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이렇게 느낄 때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과 대견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알 수 없는 속상함도 있습니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왕이불가추자년야(往而不可追者年也), 거이불견자친야(去而不見者親也).* 이럴 때만 ‘효도’를 생각하는 못난 자식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앞으로 선두의 자리에서 길을 헤쳐나갈 날들이 많을 텐데 과연 저는 무사히 여정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걱정 말입니다.
*나무는 흔들리지 않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효를 다 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세월이고
떠나고 나면 만날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이다
얼마 전 창원에 내려가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술을 한잔하게 된 날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두 분도 엄마, 아빠의 역할을 처음 해보셨을 텐데 저랑 누나 정도의 자식을 키우신 것을 보면 역할을 꽤 잘 수행하신 것 같아요.” 웃으셨습니다. “저는 나중에 제가 자식으로서 두 분한테 바랐던 점을 조금 보완해서 아주 조금 더 멋지게 미션을 수행해 볼게요!” 아주 큰 포부입니다.‘전편만 한 속편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청출어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과연 저는 세대교체를 무사히 잘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