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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25.10)

경험치 쌓기

by 영영

새로운 부서로 온 지 벌써 한 달입니다. 안도감과 감사함으로 한 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걱정되고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느꼈던 부분에 대한 갈증이 해소된 덕분입니다. 일이 쉽고 몸이 편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두 번 세 번의 확인이 필요했고 그마저도 사소한 실수가 있곤 했습니다. 흙먼지를 마시며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8시 이전에 마친 날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갑자기 어디론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 힘듦을 상쇄시켰습니다. 주말에만 올 수 있었던 서울 방에 매일 퇴근 후 도착하여 씻고 잘 수 있다는 사실이 포근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행복을 영위하는 데 중요하다는 문구를 본 적 있습니다. 행복을 꿈꾸기에 조금 더 감사하였습니다.

그래도 업무적으로 부침은 있습니다.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걸음마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회사 생활이 어디 제 마음 같겠습니까? 걷는 법을 아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빠르게 따라오라고 합니다. 빠르게 따라가면 그곳에는 제가 뛰고 점프하고 한발로 뛰놀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 물론 업무적인 역동성입니다. 언젠가 업무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마음처럼 제 몸이 따라주지 않아 난처합니다. 어느 날 사수분이 한창 야근 중에 조언을 주십니다. 복싱 같은 종목이 업무적 숙달성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의아해하는 제게 함의를 알려주십니다.

복싱을 배울 때 이론적 교습을 많이 받고 아무리 샌드백을 많이 쳐도 스파링만큼 실전 감각을 올려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아무리 스파링을 많이 해도 공식 경기를 한번 뛰고 나면 성장의 폭이 스파링에 비해 월등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직접 해보고 또 해보며 성장하면 된다고 합니다. 본인은 이 업무를 훨씬 더 오랫동안 해와서 좀 더 잘하고 있는 것이라며 꾸준히 노력하면 된다고 알려줍니다.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도 업무가 막힐 때 해결하는 방법을 빠르게 떠올리는 것도 다 숙련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선배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해보고 궁금해하고 직접 해보며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한창 바쁜 시즌이라 좀 더 연습과 성장의 시간을 주지 못하고 빠르게 끌고 가고 있어 미안하다고 합니다. 아직 익숙지 않아 저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있을 뿐 팀원분들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얼른 성장하겠다고 말씀드립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모의고사가 자주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 다른 학교 친구들이 세네 달에 한 번 있는 전국구 모의고사만 칠 때 우리 학교는 사설 모의고사도 시행하였습니다. 아마 두 달에 한 번씩 시험을 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거의 매달 모의고사를 봤습니다. ‘모의’고사이지만 ‘고사’는 ‘고사’입니다. 그렇기에 준비도 열심히 하였고 시험에도 늘 진지하게 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모의고사를 본 날에는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기에 좋았습니다. 일찍 마치고 집에 가 쉴 수도 있었고 친구들과 게임방에 가 게임을 즐길 수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단순하면서도 고등학생 남학생다운 이유입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감각 유지입니다. 사실 학교 자체에서 시행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정규 수업 시간 동안 치루는 시험입니다. 그렇기에 그 호흡이 짧습니다. 하지만 모의고사는 과목마다 주어진 시간도 다르고 문항 수도 달랐습니다. 평소의 일과대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모의고사는 모의고사만의 호흡이 필요했습니다. 그러한 시험의 흐름을 자주 접한 덕분에 모의고사를 위한 체력도 많이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실력의 파악이 보다 쉬웠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묵묵히 걷다 어느 순간에 훌쩍 실력이 오르는 것도 맞지만 부분적으로 늘어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적인 점수는 올라가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해답을 찾아가는 방향성이 얼마나 타당한지,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기 위해 사고하는 과정은 어느 정도 성장하였는지와 같은 지표는 생각보다 빨리 결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의고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시험을 자주 보는 과정에서 이러한 역량이 길러진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제는 10년이라는 시간보다도 조금 더 지났기에 저의 과거를 미화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등학생 시절 저의 학업적 성장 과정을 보신 분이 제 글을 읽으시고는 갸우뚱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됐든 모의고사를 자주 본 덕분에 실전 감각을 많이 올릴 수 있었습니다.

수능 날 1교시부터 저의 시험 흐름이 제 계획과 아주 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쌓아온 모의고사 데이터가 도움이 됐습니다. 시험이라는 것이 본디 내 본래의 실력이 다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며 1교시를 못 봤다고 남은 시험까지 잘 못 보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1교시 국어를 잘 보지 못하여도 남은 과목에서 조금이나마 만회하여 썩 괜찮은 결과물을 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 과거의 ‘모의’ 경험들이 제게 가르침을 줍니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하였습니다. 물론 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신 도시락을 안 먹을 수 없으니 수학 과목 이후 점심 먹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었고 막상 밥 먹고 나니 오후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위로한 것도 유효했습니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 또한 여러 모의고사를 통해 얻은 버티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스파링이 준 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스파링은 실전경험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한 번의 실전 전투를 영양분 삼아 두 번째 경기를 준비했습니다. 한 번의 실패에서 많은 피드백을 얻기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했습니다.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이번에는 스파링에 임할 때 다양한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실전경기에서는 비록 위기가 있었음에도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수많은 스파링과 한번의 실전경험이 만들어준 결과였습니다.

아직 부족한 제 능력에 속상했던 날들이 있습니다. 1인분을 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스파링도 열심히 하고 선배들의 스파링도 엿보고 화려해 보이는 기술은 물어보고 있습니다. 어깨너머 배운 기술들을 조금씩 따라 하며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아 가려 합니다. 그리고 경험이 쌓일수록 자연스럽게 업무적 실전경험도 쌓일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일 잘하는 직원이 되어 회사의 수익에 이바지하려는 우수 사원은 아닙니다. 그저 작은 일도 최선을 다하는, 그래서 무엇을 해도 열심히 하는, 열심히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잘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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