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태도: 아무도 몰라도 내가 아는 일
점, 선, 면. 조형의 3요소라는 이 세 가지는 미술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다. 책을 만들 때도 나는 이 세 가지를 자주 염두에 둔다. 문장부호 하나, 글자 하나는 점이다. 완성된 문장은 선이며, 단락과 페이지는 면을 이룬다. 그리고 그 2차원을 넘어서는 3차원의 입체적인 물성을 그려보고, 저자에게서 독자에게로 이르는 3차원 그 너머의 세상도 함께 상상한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페이지, 한 챕터가 유기적으로 얽혀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고, 계획과 운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면 책은 맞춤한 독자의 손에 안착한다. 책을 편집하는 일을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때로 신나게 때로는 맥없이, 또 때로는 화를 내며 점, 선, 면의 바다에서 수많은 낮과 밤을 보냈다. 책을 만들며 페이지에 코를 박고 골몰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인생의 페이지가 뭉텅뭉텅 넘어가 있었다. 오경철 편집자는 『편집 후기』에서 “편집자는 교정 교열을 하면서 원고의 갈피를 잡는다. 그러느라 삶의 갈피를 놓치기 일쑤다”라고 말했는데, 그 구절을 보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일종의 동병상련이다.
편집자라면 모두 텍스트를 중요시하기 마련이지만, ‘글이 좋으면 사람들이 알아주기 마련’이라는 말은 책을 만드는 사람 사이에서도 진부함을 넘어 뭣 모르는 순진한 사람의 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독자가 책을 발견하고 손에 잡도록 하기까지의 곡절이 굽이굽이 깊어질수록, 아이러니하지만 업계 내부에서조차 내실보다는 포장에 힘을 쏟게 된다. 둘이 따로 떨어진 별개의 사안이 아닌 만큼, 아니 떼려야 뗄 수 없이 유기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만큼, 긴밀하게 호응해야 하거늘 책을 둘러싼 환경이 열악해질수록 ‘어떻게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팔 것인가’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이 안타깝지만 냉정한 현실이다.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고 일의 경중이 뒤집힐수록 텍스트를 중요시하고 거기 매달려 시간을 쏟는 편집자는 소진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출판사 다닌다고요? 편집자는 무슨 일을 해요? 글을 쓰는 거예요?” 처음 출판사에 들어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받는 질문이다. 업계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 편집이라는 일의 성격과 윤곽이 도통 그려지지 않을 수 있다. 출판은 본디 저자 중심의 업이기 때문에, 편집자는 저자나 번역자 등을 섭외해 판을 깔고, 책이 책다울 수 있도록 텍스트의 질과 책의 꼴을 조율하고, 독자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까지 주관하고 관여하지만 어쨌든 무대 뒤에 존재하기에 보이지 않는다. “글은 저자가 쓰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고, 책은 마케터가 팔고, 인쇄는 인쇄소에서 하는데, 편집자는 대체 뭘 하죠?”라고 질문할 법도 하다. 이 의문에 답하자면, 이 모든 것을 조정하고 소통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편집자의 일이다. 이제는 SNS 등을 통해 자기표현을 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편집자도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결과물 뒤에서 묵묵한 편집자가 대다수다. 그렇기에 ‘편집자의 일’에 대해 대다수가 깜깜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얼마나 다를까? 마케터나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출판사의 바로 옆에서 일하는 동료 편집자도 다른 편집자의 일을 손에 쥔 듯 파악하기는 어렵다. 앞서 말했듯 편집자의 일이란 꽤나 모호하고 경계 없이 통합적인 데다 출판사 내부의 사정이나 기준에 따라, 입수한 원고의 수준에 따라 업무 범위가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정교하고 세세한 분업, 업무 매뉴얼, 착착 진행되는 프로세스 같은 걸 기대하긴 어렵고, 그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편집자의 업무와 노하우는 명료하게 정리되기보다 저마다의 암묵지(暗默知)로 남기 쉽다.
리베카 리의 『편집 만세』에 따르면 영국의 펭귄 출판사에는 찾아보기(인덱스)를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고, 표 뒤표지와 책날개 문안을 도맡아 작성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한다. 심지어 교열자와 교정자가 따로고, 교정자마저 대조 교정자(원고와 교정쇄를 비교하며 수정 내용이 정확히 반영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교정자)와 블라인드 교정자(원문 없이 독립적으로 텍스트를 검토하는 교정자)가 따로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운영되는 출판사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어느 출판사는 역할과 업무의 비중에 따라 기획 편집자(아이템을 기획하고 저자를 섭외하고 원고를 입수한다), 개발 편집자(저자와 협조해 원고의 구조와 내용이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조율한다), 본문 편집자(앞서 예로 든 펭귄 출판사의 편집자 업무는 거의 본문 편집자의 역할이다)로 나누고, 경우에 따라서는 윤문 편집자(문장을 매끄럽고 가독성 좋게 다듬는다), 관리 편집자(관리자로서 경영 업무에 비중을 더 둔다)로도 나눈다고도 하는데, 이마저도 극히 드문 구분이고 대부분은 한 사람의 편집자가 전 과정을 담당한다. 여기에 보도자료는 기본이고 카드뉴스와 상세페이지 원고 작성 같은 광고, 홍보 업무까지 추가된다. 제대로 할라치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엄살이 아니다.
경력의 절반은 출판사 안에서, 나머지 절반은 출판사 밖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앞서 열거한 업무를 다양한 포지션에서 두루 경험했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편집자의 일은 도통 만만치가 않다. 조직 내의 편집자는 과중한 책임과 실적 압박을, 조직 밖의 편집자는 안에서보다 열악하고 불합리한 조건을 견디며 일한다. 그때그때의 여건과 상황에 따라 안팎을 오가며 안에서는 밖을, 밖에서는 안을 내 자리 보듯 애틋하게 바라봤다. 어느 곳에서 일하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서 일하는 동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매체에 고자극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출판 생태계를 지켜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구석이 되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마음과 상관없이, 텍스트를 둘러싼 소문이 나날이 흉흉해지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출판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텍스트 업무의 비용이(이를테면 번역료나 감수 비용, 추천사 비용) 오랫동안 제자리걸음 중이라지만 그중에서도 프리랜서 편집자의 작업 비용은 그야말로 쳇바퀴를 조금 벗어나는 수준이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세 번을 볼 것을 두 번만 보고 나머지 한 번은 적자 대조만 보는 프리랜서 편집자도 꽤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본문 편집자는 보통 원고를 세 번 이상 본다. 세 번이 최소한이다. 단계마다 중점적으로 볼 것이 따로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규칙이다. 멀리서 가까이서, 다시 멀리서 가까이서, 텍스트와의 거리를 좁히고 넓혀가며 점, 선, 면의 세계가 조화롭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봐야 한다. 고칠 것이 많은 원고라면 네다섯 번을 봐도 판면이 정연해지지 않아 애가 타고, 고칠수록 오탈자 같은 실수가 나오기 쉽기 때문에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런데 최소한의 횟수도 지키지 않는다? 그 소문을 들은 날, 오랫동안 텍스트를 홀대해온 업계를 탓해야 할지, 자기 작업에 대한 자부심을 저버리는 편집자를 탓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으로 아연했다.
밖에서만이 아니다. 안에서도 텍스트는(텍스트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편집자는) 홀대받는다. 한 대형 출판사는 교열부서를 따로 만들어서 좌천 대상을 그리로 보낸다고 하니, 글을 다루는 출판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기엔 텍스트에도 편집자에게도 너무 비윤리적이지 않나. 이쯤 되면 소문이 아니라 괴담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민음사의 일기 시리즈 중 한 권인 『교정의 요정』에서는 교정 작업을 ‘지옥에서의 밭 갈기’라고 표현한다. 위트 있는 데다 너무나 진실이라 와하하 웃었는데, 그 지옥에서마저 편집자가 소작농 취급을 받는 현실을 생각하면 미간에 주름이 깊어진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가, 텍스트가 가 닿도록 하는 것이 출판의 본령이거늘, 읽기 전에는 티가 나지 않는 노동이라고 해서, 저자 뒤에서 텍스트를 보강하는 그림자 노동이라고 해서 아예 없는 셈 칠 셈인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이 업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비관으로까지 치닫고 만다. 노동이 본디 인간을 소외시킨다지만 이 악순환이 지속되다가는 결국 한 줌 독자마저도 실망해 떠나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동떨어지거나 모호한 단락을 쳐내거나 수정하고, 짜임새가 열악하거나 구조가 어색한 문장을 바로잡고, 적절하지 않은 단어가 유발하는 두통을 참아내며 맞춤한 단어를 떠올려 갈아 끼우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의심하고 확인하고 골라내 바로잡고, 문장이 절뚝이지 않게 적절한 리듬감을 부여하고, 판면이 균형과 미감을 잃지 않도록 점과 선을 이리로 저리로 옮기는 일. 어느 한밤, 원고 속 수많은 문장을 고운 채에 거르듯 일일이 들여다보고 있자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잦게 찾아온다. 안 그래도 고독한 일이 한없이 외로워진다.
3차원 너머를 그려보기엔 너무 고단한 깊은 밤, 오직 문장과 나만 있는 것 같은 밤이면 뜬금없는 의문이 찾아온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졌다. 그 나무는 정말로 쓰러진 걸까? 내가 조탁하고 있는 이 문장을 읽어줄 이가, 알아줄 이가 있기는 한 건가? 함께 일하는 사람이나마 알아채주긴 할 건가? 그런 사람 하나 없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는 의미가 있나. 질문은 이렇게 변주되기도 한다. 좋은 책은 팔리지 않아도 여전히 좋은 책인가. 좋은 걸 좋다고 알아줄 이가 더 많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그 끝에서는 언제나, 일단 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꿈쩍없이 버티고 서 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라지만 어쨌든 나무가 쓰러졌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고, 그건 누가 보든 말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쨌든 그 말을 전하고 있는 나는 나무가 쓰러졌다는 걸 안다. 실재론적 입장에서든 관념론적 입장에서든 이 밤 나는 점, 선, 면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점, 선, 면의 세계에서 누구 하나 찌그러지지 않도록 서로를 활활 펼쳐주며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버리지 않기로 한다. 서로의 노동이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응원하고 북돋을 마음의 여유까지 영영 잃어버리지는 않기로 한다. 그럼으로써 자잘한 텍스트에 담긴 메시지가 멀리까지 뻗어 나갈 기운을 얻는다고 믿으므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여전히 나이브한 소리나 해대는 이상주의자로 보일지라도.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과 그 노동의 증거가 아닌가.”
레이먼드 카버의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에 나오는 글쓰기에 관한 말이다. 책 앞에서, 그 모든 점, 선, 면 앞에서 내 마음도 같다.
☆연결 콘텐츠
-『편집 후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709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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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만세』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4700285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5379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