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 바디, 노키드 마인드
#1.
“아이도 낳아 키워본 사람이 왜 저러나 몰라요.”
직장 상사에 대한 불평을 나누며 동료 A가 무심코 던진 말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애를 낳고 키우며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는데도 왜 사람이 저리 유치하고, 앞뒤 말이 다르고, 자기밖에 모르냐는 뉘앙스.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지 않은 여자는 철이 없다’는 오래된 편견에 공모자가 된 것 같아 못내 찜찜하고 씁쓸했다. 그리고 내게 아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A의 무신경함에 조금 상처받았다. ‘아이도 낳아 키우는 당신은 어찌 그리도 생각이 짧은가’ 싶은 반발심도 들었다. 아이가 있는 직장 상사와 그 정반대편에 있는 내가 한 보따리로 싸매져 매도되는 기분. 이쪽에서 보든 저쪽에서 보든 어쨌든 옳지 않은 말이다.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은 불완전한가? 이건 결핍이 있는 삶인가? 아직 덜 자란 미성숙한 이의 삶인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삶은 어떨까, 그려본 적이 있다. ‘아,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전인격적인 관계 아닌가’ 싶어서 그 관계를 앞당겨 상상해보기도 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 가까이서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유년을 다시 한번 겪는다면 인생을 두 번 사는 기분이 아닐까 흐뭇하게 짐작해보기도 했다. 환장할 만큼 힘들고, 서운하고 복장이 터지는 순간도 많겠지만, 지지고 볶으며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면 그만큼 삶이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멀미 날 것처럼 울렁거리는 삶의 바닥이 단단하게 안정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그랬으면서도 막상 결혼 후에는 어쩐 일인지 아무 생각도, 아무 계획도 없이 지냈다. 낳아도 그만, 안 낳아도 그만이지 싶었다. “나도 외손주가 있으면 좋겠다” 같은 은근하고 귀여운 압박의 말, “낳으면 내가 봐주겠다” 같은 공수표 같은 말을 엄마에게 한두 번쯤 들었지만, 집안 어른 누구도 심각하게 아이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다. 아이를 가져볼까 하는 마음이 다시 조금 고개를 들었을 때는 알게 모르게 결혼생활이 이미 파탄 난 후였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헤어짐으로 마무리된 결혼생활에 아이가 없어서 다행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삶에서 놓친 장면이 있지 않나’ 싶어 허전하고 아쉬울 때도 있지만 이내 도리질을 한다. 평행우주의 어딘가에서는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생은 아니다.
#2.
같은 직장을 다닌 적은 없지만 오래 함께 일한 귀한 인연이 있다. 디자이너 S와 알고 지낸 세월을 헤아려보니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공통점 하나 없지만 S의 넉넉한 인품과 귀여운 성격 덕에 이제는 ‘일로 만난 사이’만이 아니라 친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은 사이.
S는 충주에서 결혼을 했는데, 그 덕에 나도 충주 구경을 처음 해봤다. 양쪽으로 늘어선 나무가 허공에서 푸릇해진 두 손을 맞잡기 시작하는 계절. 떨어져서 충주호를 가득 덮고 있는 벚꽃잎이 뭉치고 또 따로 떨어져 샤브레 과자 같은 무늬를 이뤘던 기억이 또렷하다.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내가 결혼 준비에 한창일 때 S는 본업을 살려 청첩장을 디자인하고 제작까지 해서 선물해주었고, 몇 년이 지나 S가 결혼할 때는 취미로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고 있던 때라 내가 결혼식 사진을 찍어주었더랬다.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아 옅게 불안하긴 했어도, 그럭저럭 낙관이 우세하던 젊은 날이었다. 그리고 S가 짧은 결혼생활을 끝내고 먼저 다시 솔로가 되고, 그다음에는 내가 솔로가 되었다. 마음이 어려울 때 S는 먼저 경험한 입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주며 의지가 되었다.
그런 S가 아이 얘기를 했을 때는 조금 놀랐다. 결혼생활은 썩 좋지 않게 마무리되었지만, 아이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닐 텐데, 두 배가 아니라 세 곱절 네 곱절 힘들 텐데도 아이라는 존재는 그 모든 어려움을 덜어주고 충만함을 선사하는 무엇이 될 수도 있는 건가.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S는 그 생각이 여전한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3.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학교 앞 카페. 동기나 선배도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던 곳이라 그곳은 일터라기보다 아지트나 참새 방앗간에 더 가까웠다. 라면, 볶음밥, 커피, 생맥주까지 그 시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구색이 적당히 갖춰진 곳. 신계라밥(예쁜 그릇에 밥을 조금 담고 계란을 풀어 끓인 라면을 담아 낸다), 모짜렐라치즈볶음밥(모짜렐라치즈라는 단어를 이때 처음 들었다), 커피플로트(자잘하게 간 얼음이 들어간 아이스커피에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올려준다)…… 같은 메뉴의 작명 센스가 신선했다. 아르바이트생의 지인이 손님으로 많이 찾아오니 같은 학과 학생들을 몇 명씩 고용한 사장님의 전략이 좋았다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곳을 사랑방처럼 찾을 수 있었던 건 큰언니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준 사장님의 인심 덕분이기도 했다.
어려운 음식이 아니었기에 사장님이 재료만 준비해놓으면 조리도 서빙도 아르바이트생의 몫이다. 가게 문을 아르바이트생이 여는 날도 많았다. 어떤 공간에 맨 처음으로 들어가 하루를 준비하는 그 기분을 그때부터 좋아했다. 때로 조용히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왁자하게 떠들며 어울리기도 했던 그 공간은 지하에 있었지만, 떠올리니 어쩐지 햇살이 비치는 것 같다.
지금도 종종 ‘철이 없네, 철이 없어. 나잇값도 못 하네’ 싶은데,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얼마나 더 미숙하고 덜 여물었을까. 그때 내 눈에는 카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다른 가게를 하는 남편이 있고, 카페에는 느지막이 출근하고,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사장님 신간이 꽤 편안해 보였다. 무엇보다 아이가 없어서 생활에 부담이 없고 태도에 여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사고는 얼마나 단편적이고 편협했는지……. 자영업자의 고단함도, (나중에 알았지만)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 느끼는 슬픔도 뒤편의 일이라 당시의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만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어리석음.
아르바이트로 인연을 맺었던 학생에게 어려운 일이나 기쁜 일이 생기면 손편지와 선물을 챙겨주시던 분. 주방에서 언제든 뭐든 만들어 먹어도 된다던 분. 나누는 걸 기뻐하고 함께하는 걸 즐거워하는 품이 넓고 따뜻한 분이었다. 아이가 있든 없든, 있는 그대로, 충분히 멋지고 좋은 어른이었다.
아이를 낳고도 조금도 자라지 않은 것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가 없어도 충분히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사람도 있다.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클리셰는 참이 아니다. 이제는 사라진 그 카페, 이제는 소식도 모르는 그분이 조금 그립다.
#4.
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 와중에 커리어까지 훌륭하게 이어가는 여성이 참 많다. 지난 시절 아이를 키우고, 큰 살림을 하고, 일까지 하던 엄마에 비하면 내가 너무 작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존경이나 경탄과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 ‘아이를 낳아야 성숙해진다’라는 명제는 별개다.
모두가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며, 아이를 낳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깊은 경험도 아니다. 오히려 『아이 없는 완전한 삶』 같은 책은 그 반대편에 서서 아이 없이도 행복할 수 있고, 아이 없는 삶이 오히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를 낳고 오히려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가족중심주의에 갇히는 사람도 많다.
여전히 세상에는 아이를 낳아본 적 없고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몸과 마음과 생활에 대한 편견이 가득하고, 부모가 되어봐야 어른이 된다는 내러티브가 득세하지만, 각자의 사정과 형편과 생각에 대한 이해가 (나부터라도) 넓어졌다는 데 안심한다. 삶의 모양새, 가족의 모양새는 다양하고 그 형태에 가치 판단은 필요치 않다.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고,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
여전히 누군가는 ‘아이를 낳아 키워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지 차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사실일 거다. 평행우주에 있는 또 다른 나는 지금 이곳의 나와는 분명 다른 사람일 테다. 하지만 그렇게 부모 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가르고 우열을 가리려는 마음 자체가 이미 어른스러운 마인드는 아니지 않을까?
혼자 사는 사람, 특히 혼자 살며 나이 드는 삶에 대해 떠올려본 여성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에이징 솔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독립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 관계 맺을 줄 알게 될 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만한 기준이라면 이미 많은 솔로가 충분한 어른이 아닐까. 그리고 나 또한 ‘철없다’는 잣대를 내 안에 들여와 나를 깎아내리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듬직하고(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게, 누군가 기대와도 휘청이지 않게) 유연한(누구와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게)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 철이 좀 없으면 또 어떤가, 나는 나대로 철없는 귀여운 어른이 되면 되는 일 아닐까. 철이 없어도 충분히 어른일 수 있다고, 그런 사람도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하며 살면 되는 일 아닐까?
☆연결 콘텐츠
-『아이 없는 완전한 삶』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3880492 (현재는 절판)
-『에이징 솔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407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