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잎에서는 무화과 향이 난다

어디에서 누구와 살까

by 홑들

무화과가 쑥쑥 자란다. 이게 맞나, 싶을 만큼 맹렬한 성장이다. 화분 안에서 이렇게나 크게 자랄 수 있다고? 잎사귀가 이렇게나 큼직하다고? 부족한 환경에서도 만발한 기세가 놀랍다.


지금은 화분에 담겨 좁은 베란다에 놓여 있지만 이 무화과의 고향은 여기서 먼 남쪽, 영암이다. 작년에 택배 박스에 조심스레 담겨 올라온 묘목을 봤을 때만 해도 이렇게 ‘장성’한 모습은 생각도 못 했었다. 높다래진 키를 보니 열매 욕심도 나는데, 올해부터 열릴 거라는 예측도 묘목과 함께 도착했건만 아직 열매 맺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무심한 척하면서도 들은 얘기가 있으니 혹시나 하며 나도 모르게 자주자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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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자라나는 무화과나무



이 묘목은 책을 만들며 인연을 맺은 저자분이 보내주었다. 예전에 서울로 출발하며 아침에 서둘러 딴 거라며, 영암이 무화과로 유명하다며 손에 쥐여주었을 때 맛있게 먹었던 걸 기억하신 거였다. 세상에, 묘목을 선물로 받는 사람이 있을까. 직접 삽목해서 만든 묘목을? 더구나 나무가 다칠세라 정성껏 포장하고 우체국에서 택배를 부쳤을 그 수고로움을 헤아리자니 절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게 된다. 도시에 있는 나는 뭔가 보답하고 싶어도 마음만 굴뚝이고 매양 건넬 것 없는 빈손인데, 묘목 외에도 결명자차나 보리차, 밀랍으로 만든 초, 허브 오일 등 자연에서 거두고 기막힌 솜씨를 보탠 선물을 때마다 많이도 받았다.


그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워서 지금도 내내 생각 중이다. 나도 뭔가를 보내드려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하고(1년 넘게 생각만 하고 있다니, 나도 참 나다). 이럴 때 보면 도시에서의 삶은 상상력이나 고유함 측면에서 참으로 빈곤하다.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규격화된 획일적인 물건 말고(요즘은 시골이라고 해서 못 구할 도시 물건이 없으니까), 대체 무엇으로 이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을까. 내가 시골살이를 동경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초록이고, 봄이 되면 지천에서 나물이 돋고, 저마다 개성과 향기를 뽐내는 자잘하고도 화려한 꽃이 피어나고, 내 손으로 키운 것으로 채운 밥상이나 쨍하게 추운 겨울밤 별이 총총히 박힌 하늘 같은 것을 상상하면 몸 안쪽에서부터 상쾌하면서도 충만한 기운이 차오른다. 똑같이 생긴 건물에 비슷비슷한 욕망을 품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면 어쩐지 숨이 막힌다. 붐비는 백화점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공기마저 희박한 느낌이다. 죄다 똑같은 도시가 아니라, 조금씩 달라서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자연 속에 살면 좋겠다는 작은 씨앗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다.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를 보고 갑작스레 생겨난 로망은 아니다. 오래 품은 이 감각이 어디서 왔을까, 시골에 대한 이 뿌리 깊은 정서는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되짚어보면 그곳엔 늘 외갓집이 있다. 시골에서 태어나긴 했어도 정작 그 집은 사진 속에만 있을 뿐 내 기억에는 전혀 없고, 방학 때마다 찾았던 외갓집이 내게는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여름이면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고 물장구를 치고 옥수수니 풋콩이니를 장작불에 삶거나 구워 먹고, 겨울이면 장판이 타버릴 정도로 뜨끈한 구들장에 누워 군고구마를 먹고 비닐 포대를 깔고 눈썰매를 탔던 그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산에 지천인 나뭇가지를 대충 골라서 윷을 직접 만들어 가지고 놀던 그 소박함과 천진난만함이 바탕 정서가 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부서지는 햇빛 아래서, 찬 공기가 스며든 달빛 아래서 한껏 자유롭고 걱정 없던 그 시절을 언젠가는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오래 꾸었다.



shraddha-kulkarni-BkaTsvOwa-4-unsplash.jpg 자연의 색은 참 곱기도 하지 (이미지: Unsplash, shraddha kulkarni)



영암의 저자는 ‘은는이가’라는 필명을 쓴다. 주격조사를 모아놓은 그 필명에서 자기 인생의 주체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동명의 유튜브도 운영한다).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일찌감치 시골에서의 주체적 생활을 택한 삶의 태도가 선명하게 담겨 있으니 필명으로 제격이고 또 참 근사하다.


이제는 다 절판 상태인 오래된 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한때 사랑했던 책들인데 내 취향이 대나무같이 한결같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속 저자들처럼 남편과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가며 대리만족을 실컷 했다. 집터를 구하고, 직접 집을 짓고, 때로 삐걱거리면서도 서로에게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주고, 시골 마을에 적응해 살아가는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고단해도 그만큼의 자유로움과 뿌듯함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가까이서 곁불을 쬐며 혹은 된바람을 맞으며 배웠다.






꼭 서울에 살 필요가 있을까. 오래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리되지 않은 생각에만 머물 뿐 그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소속 없이 일한다는 건, 어디서 살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교정지 등을 퀵서비스로 주고받으며 일했지만, 이제는 거의 파일로만 일거리가 오간다. 다시 직장생활을 할 요량이거나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새로운 일을 도모할 생각이 아니라면, 비싼 주거비를 치러가며, 많은 기회비용을 써가며 꼭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딸린 식구는 고양이 한 마리뿐이니 이 집의 가장(!)으로서 나만 결정하면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과단성 있게 옮기기는 쉽지가 않다. 미약하나마 삶의 기반이 모두 여기에 있고, 뭔가를 다양하게 모색해보기에는 역시 서울이 낫다는 희미한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더구나 시골살이라는 게 꼭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건 보고 들어서 충분히 아는 사실이다. 병원이나 문화시설 등 제한된 인프라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 들어 서울에서부터 100킬로미터씩 후퇴해가며 거주지를 구하면 여유 있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한참되었지만 그러기엔 은퇴를 한 것도 아니고 아직 젊은데……, 후퇴라니 내가 원하는 게 후퇴인가, 그렇다면 물러서면서도 넓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나, 하면서 뒷말이 늘어진다. 이건 지금은 여전히 여기에 머물고 싶다는 뜻일 거다. 다만 곧바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가뿐하고도 시름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는 해둬야 할 것이다.



leah-wilson-IJJxBcTHldg-unsplash.jpg 현실에 바탕을 둔 낭만을 실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미지: Unsplash, Leah Wilson)



준비의 첫 목록은 역시 함께할 사람이다. 낯선 곳에 혼자 덩그러니 고립될 계획이 아니라면 느슨하게나마 연결될 공동체가 필요하다.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여러모로 시너지를 내고 있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이야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조립식 가족의 형태, 혹은 동거하는 친구를 아예 딸로 입양한 『친구를 입양했습니다』의 새로운 법적 가족 형태도 남-녀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라이프스타일이나 추구하는 바, 삶의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형태로 한 집에서 생활을 공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런던의 시니어 공동주택 ‘뉴라운드’ 같은 곳을 찾아보거나 설립을 추진해볼 수도 있겠다. 뉴라운드의 생활 기조가 “서로를 돕되 방해하지도 소외시키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라고 하는데 가히 그 균형을 잡는 데 예술에 가까운 기술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꼭 함께 살지는 않아도, ‘간헐적 식구’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가며 일상적으로 안부를 챙기고, 가끔 함께 밥을 먹는 동네 식구들. 지금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이 들어 옆집이나 같은 동네에 모여 살면 좋겠다고 말하는 친구 몇이 있지만, 이 또한 뜬구름으로 머물지 않으려면 사소하게나마 구체적인 계획의 형태를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1년 넘게 무화과를 직접 키우며, 겨울이면 잎이 노란빛으로 물들어 이파리가 뚝, 떨어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키운 식물 중에 이렇게 잎을 내놓는 아이는 처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본가 마당에 무화과가 있고, 그걸 따먹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고 여겼으면서도 잎을 내고 열매를 맺고 잎을 떨구는 때와는 시차를 두고 방문했기에 무화과나무를 안다고는 할 수 없던 거였다. 또, 무화과 가지나 잎에서도 과실과 똑같은 향기가 난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잎과 열매의 향이 같은 식물이라니, 그런 나무가 또 있나.


잠시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 좋아해도 다 알 수는 없는 것, 아마 모든 것이 그렇지 않나 싶다. 오래 봐야, 오래 품어야, 내가 직접 해봐야 그나마 윤곽이라도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20250314_074953.jpg 잎을 다 떨어뜨리고 올봄 새로 틔운 잎. 앙증맞은 초록이다.


생각을 백번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은 행동의 문제다. 현실에 한 점이라도 그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행위뿐이다. 키워보지 않으면, 오래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가 있듯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내가 그토록 경계하는 빈말이 되고 말 거다. 일단은 시골은 아니더라도 자연이 가까운 중소도시를 물망에 올려놓고 작은 텃밭이라도 직접 가꿔봐야지, 하고 생각을 굴려본다.


그나저나 무화과나무의 본래 주인인 영암의 그분에게는 무엇을 보내드리면 좋을까. 아무도 내주지 않은 숙제를 품고 있는 내내, 무화과가 왔을 그곳 풍경을 떠올리며 좋아서, 마음이 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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